치매할머니의 위로."아가!꼭 살아야 된대이"
가장(家長)이 되어버렸다.
가족들의 보호아래,
6살이 된 아들은 어린이집에
다녔고, 하원해서 집에 오면
엄마가 케어해 주셨다.
아들은 오빠를 아빠처럼 따랐고,
같이 뒹굴고 운동하며
드럼과 피아노를 오빠에게
배우고, 같이 공부도 하였다
직장생활을 이어가던중
오빠가 아프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대학병원으로 가면서
바로 입원수속을 밟아야 했다.
당뇨로 인한 신부전증이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오빠는 눈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퇴원하면서 일주일 세 번
혈액투석을 해야 했다.
오빠는 퇴직10년을 앞두고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고,
나 또한 오빠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기에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 세 번.
오빠의 신장투석을 위해
오빠를 태우고 투석실에서
4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오빠가 투석하고 4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오빤 당뇨와 혈압이 잡히지않아
병원에 입원중 이었을 때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뇌출혈이었다.
종합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아버지는 평소 건강하셨기에
모든 가족들이 놀랐다.
언니들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아버지를 입원시키기위해
수속을 끝내고 병실로 가니
아버지께서 나를 보시며
어둔한 말씀으로
"내가 죽으면 니하고
00(울 아들)이랑 둘이서
우째살래?"
"아버지 뭔 말씀을~
오래 사셔야지요.
무슨 그런 말씀 하시노
걱정 마이소! 오래 사실테니"
아버지께 화를 냈다.
평소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버지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표현하신 건 처음이었다.
죽는다는 그 말씀에
화가 났지만, 아버지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원망하였다.
오빠의 소원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 떠나는 불효자가
안 되었으면 좋겠어.'
아버지는 그 소원을 들어주셨다.
병원 계신지 한 달도 안되어서
아버지는 막내딸에게
가슴아픈 말씀을 하시고선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부고소식을 오빤
병원 입원실에서 들어야 했고
꺼이꺼이 통곡을 하였다.
아버지 입관할 때 관을 붙잡고
모두 통곡하고 있을 때
엄청난 전기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언니들이 관을 붙잡고
몸부림치며 울고 있었기에
언니들을 살려야겠다
생각이들어 언니들을 밀쳤다.
나중에 언니들에게 물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거다.
아버지가 정 떼려고
그러셨나 봐요.!
누군가가 이야기하였다.
3주 후에 오빠가 돌아가셨다.
51살!
인생에서 가장 꽃 피는 시기.
오빠는 우리를 뒤로하고
아픔이 없는
편안한 곳으로 떠났다.
아버지와 오빠의 장례를
같은 달에 치르고 나니
기운이 없어졌다.
말하기도,들을 힘도 없었다.
온 세상이 조용한 것만 같았다.
엄마도 나도 그저
멍하니 집에만 있었다.
뭘 부터 해야될지
길을 잃어버렸다.
먹고 토하고 또 허기가 져서
먹었다.또 토하게되고,또 먹고
매일 반복이었다.
몸은 물에 흠뻑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엄만계속 누워만 계셨다.
엄마는 남편도,아들도
3주 간격으로
떠나 보낸것이다.
아까운 아들까지
먼저 세상을 등졌으니
엄마는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1년동안 나는 숨죽여
집에만 있었다.
나 또한 힘들어서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 보지않았다.
외면했다.
이렇게 지내다가
내가 미쳐버리거나,
죽을것 같은 느낌이들었다.
'일을 해야겠다.
다시 일어서 보자'
다행히 집에서 차로
10분정도 거리에
요양병원에 취직하게되어
근무를 하기시작했다.
엄마도 손주를 키워주어야하기에
조금씩 활기를 찾는듯 했다.
내가 다닌 요양병원은
중증 치매환자나
말기암 환우들 이었다.
어느날 환자분들의 점심시간.
병실 할머니들의 방에
점심식사 케어해주러 갔다.
80세 넘으신 치매가심한
할머니 이셨는데
평소에는 심한욕을 하셨고,
시도 때도 없이 밥달라고
큰소리로 고함치시는 분이었다.
손이불편하셔서 침대를 일으켜
앉게 해드린 다음
식사를 도와드렸다.
"아가.니도 밥무라"
"할매.나는 이따가 무도된다.
어서 자셔"
한 숟갈 드시고서는,
"아가.사는게 힘들제?
나도 사는게
힘들었데이.그래도 우짜겄노.
살아야제!살라고 준 인생을
스스로 끊을수는 없지 안캤나.
살아야 된대이.꼭 살아야된대이.
열심히 살거래이"
주체가 되지않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흘렀다.
할머니 껴안고 엉엉울었다.
근무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3교대근무도,입원환자들의
처치하는일들도
힘들어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나를
위로하시는것 같았다.
인생의 큰 아픔이 있을때마다
감사하게도 누군가에게
항상 위로를 받았다.
내가 그 병원을 10년동안
열심히 다닌 이유도
그 할머니의 위로가 가장컸다.
열심히 매일 최선을 다했다.
엄마도 돌보아야했고
아들도 잘 키워내야하는
나는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