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끝이 났다.
23살 제과회사 물류관리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23살에 결혼하고 싶었던 난
결혼은커녕 애인도 없었다.
출근하고 이틀째 되는 날.
사무실에 박기사님이 올라오셨다.
내가 있는 부서는 2 공장
아이스크림부서였다.
1층은 아이스크림 만드는 공장
이었고, 사무실은 2층이었다.
박기사님은 큰소리로
"3번 라인 벨트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구요.
몇 번이나 교체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도대체
언제 오냐고요"
생산직 직원들은 3교대였다.
조 마다 여직원 50명 정도였고
기사님들이 10명 정도 되었다
박기사님은 기사님들의
총책임을 맡고 있어, 그만큼의
책임감이 투철해야 했고,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박기사님의 박력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쿵쾅거리며 사무실 직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박기사님만 보이기 시작했다.
온통 사방이 흐릿하였으며,
그의 말은 나의 귀엔 자장가처럼
조그맣게 들려왔다가 커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김 과장님이 나의 어깨를 툭 쳤다.
"ㅇㅇ씨. 박 기사님 커피 한잔
태워주라"
정신 차려보니 박기사님과
김 과장님, 이대리님이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커피를 드리니 박기사님이
웃으면서 "고마워요. 어제부터
출근했죠? 잘 부탁해요.
재고조사하러 다니면 1층에도
자주 보게 되겠네요."
박기사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뵐 때마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나를 알아차렸다.
어느 날
재고조사 중이었던 난 현장에
있었고, 암모니아 냄새가
조금씩 나는 것 같았다.
잠깐이겠지 했는데, 그 냄새가
점점 심해져 모든 기계가 올스톱
이었으며, 직원들은 밖으로
대피하였고, 난 안개가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계결함이었다.
그때, 큰 소리가 들렸다.
"누구 있어요?"
박기사님 소리였다.
"여기 사람 있어요!"
나의 소리에 원재료실 문을 열고
박기사님이 나의 손을 잡고
한쪽손으로 입을 막고 있어!
그렇게 난 밖으로 나오게끔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난 살아났다.
그 이후 박기사님과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나는
나의 감정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고백해서 좋다고 하면
사귀는 거고 싫다고 차이면
깨끗하게 잊어버리자.>
그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오전근무인 박기사님이
점심 후 혼자벤치 앉아서
커피 마시고 있었다.
"박기사님. 저 할 말 있어요?"
"응. 이야기해. 무슨 말?"
"저기... 제가 며칠 생각해
보았는데요, 제 감정이 맞는 것
같아서 이야기할게요.
부담 갖지 마세요.
제가 박기사님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니 좋아해요!"
박기사님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싱긋 웃으며
"인마.. 밥 먹고 난 후 나른한 거야.
커피 한잔 마시고 일해.
나중에 보자!"
그 자리를 떠났고, 난 멍하니
한참이나 벤치에 앉아있었다.
망했다! 나 차인 거네.
이제 부끄러워 어떻게 봐야 하지?
그로부터 며칠 후
박기사님이 슬쩍 나에게
선물상자를 건넸다.
회사에서는 풀어보지 못하였고,
퇴근하여 방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풀어보았다.
책 한 권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신달자 작가님의
'별은 아파도 반짝인다'
에세이였다.
편지에는 굵은 글씨체로
간단하게 적혀있었다.
"잘 봐주어서 고맙다.
직원들에게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년 5월에 결혼한다.
넌 좋은 사람이니 멋진 남자
만날 거야.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으니, 걱정 말고
좋은 선. 후배로 지내자."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끝이 났다.
내가 결혼하기 한 달 전까지
근무했던 4년 3개월 동안
박기사님 말처럼, 우린 친한
직장선. 후배가 되었다.
가끔 그 회사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행복했던 곳이었다.
그 속에는 뜨거웠던 청춘과
나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
나의 짝사랑도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