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립 Dec 26. 2022

완벽주의인 사람이 어떻게 ADHD가 있죠? (1)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이야기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이 ADHD도 있을 수 있을까요?


 ADHD가 있는 사람에서 강박증도 나타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강박은 무언가에 집착하고 챙기는 문제이고

ADHD는 잘 못 챙기고 팽개치는 문제이니

이 두 가지 경향은 어떤 경향성의 축선(AXIS LINE)에서 서로 반대편 끝에 있는 문제 같습니다.


약 10여 년 전, 제 자신의 문제를 판단할 때도 혼란스러웠던 지점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제 자신을 쉽게 지치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은 완벽주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예상과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오는 자신과 그 상황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공들이던 그 일 자체를 포기하는 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나마 제 자신만의 문제라면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지만, 계획이나 원하는 대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한 결혼과 양육이라는 환경에서는 가족의 안전과 위생에 관한 심각한 강박이 나타났습니다.


현실적으로 확률이 극히 낮은 위험에 대한 안전을 확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련된 단서를 검색하고 확인하는 강박은 제 에너지를 갉아먹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강박은 상식선에서 안심이 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데, 오히려 현실적으로 불가한 완벽한 안전함을 찾기에 집착할수록 더 빠져들고 강박에 에너지를 더 쏟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뭐, 적당히 괜찮아'라는 정서적인 안심이 결핍된 상태인 것을 인지적으로 완벽하게 괜찮음을 찾기에 불가능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면서 일시적인 안심을 구합니다.


당시의 제 의학적 지식은 "우리나라의 환경은 아이들을 양육하기에 너무 안전하지 않은 곳이야."를 더 확인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당시에 집착한 것들- 납 페인트, 중금속 함유 장난감, 버튼형 건전지, 콘센트 사고, 감염병, 석면 텍스 천정과 슬레이트, 농약 살포...)


한 2년을 그렇게 강박과 함께 불안한 상태로 지내면서도 약을 복용하지 않고 버티고 지냈습니다.


갓 정신건강과 전문의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이 정도 문제는 자가 인지치료로 해결할 수 있어야 전문가'라는 자격지심과 '군의관 복무라는 환경적으로  특수한 상황' 때문일 것이라는 합리화로 버틴 듯합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두 손 다 들 정도로 힘들어지고 나서야(일상 활동에 영향을 줄 정도의 우울과 의욕 상실) SSRI 항우울제를 꾸준하게 충분한 용량을 복용하면서 약 효과를 직접 체감하고, 바닥을 찍고 회복을 향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련할 정도로 긴 시간 힘들게 버티다가 온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이상하게도 정작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 때 '상황에 대한 합리화'와 '자신에 대해 시험하기'과 '자기 학대를 통한 위로', 그리고 '의욕저하로 인한 실행력 저하'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내원하기까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어쨌든 약물 복용을 하면서 강박에 대한 문제가 해소되면서 제게 가장 지분이 큰 문제는 강박장애가 분명하구나 하고 더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성인 ADHD 치료제 의료보험 적용 등을 통해 성인 ADHD가 치료 영역으로 인정되면서 진료 경험을 쌓아가다 보니 정말 많은 성인 ADHD 분들에서 강박과 완벽주의 경향을 관찰하게 됩니다.


물건을 강박적으로 잘 챙기는 습관.

약속 시간이나 마감을 칼 같이 지키기.

실수 여부에 대한 강박적 되새김질.

사람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나 상대방의 생각을 예측하는데 끊임없이 집착하기.

성과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불안.

그냥 강박 증상 자체.


성인 ADHD 치료 경험 초반에는 물건과 시간을 잘 챙기는 사람이 ADHD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진단을 보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덤덤히 물건, 약속 그리고 일정을 잘 챙기는 사람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그런 행동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과한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엄청난 차이이지요.


진료 경험이 축적될수록 위와 같은 강박 혹은 완벽주의는 ADHD와 매우 관련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수년이 지나 제 스스로의 문제 또한 동료 선생님과의 상의를 통해 ADHD로 진단하게 됩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인데 진료 후 글을 쓰다 보니 이제 뇌가 한계에 달했습니다.


제목에 얼른 (1)을 붙이고 다음시간에 강박과 완벽주의가 어떻게 ADHD와 관련도가 높은지 학문적 관점에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