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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Sep 02. 2024

우리의 다음 집을 소개합니다

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집 계약을 마치고 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금 사는 동네에서 십 분 남짓 올라가는 새 보금자리.

부동산 계약을 하러 가는 길에 둘러보니 이 동네가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로 작은 골목 구석구석 카페와 가게들이 새로 생긴 모습입니다. 부동산에 도착해 자전거를 주차하고, 이내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저보다 일찍 오신 집주인 분들을 보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드리며,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드립니다.


집주인은 49년생 해병대 출신의 할아버지와 다정한 안주인 할머니였습니다. 두 부부는 남편이 장교 은퇴 후, 성북동에 빌라를 한 채 지으셨고, 꼭대기 층에 살며 아래 집들을 임대해 왔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할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군인의 자태는 꼿꼿하고 우직했습니다. 입고 오신 바지의 다림질이 눈에 띄었으니까요.


이 계약으로 독립 후 네 번째 집입니다. 그동안 네 명의 집주인을 경험했네요. 첫 번째 집주인은 제가 다니던 대학교의 수위 아저씨로 일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에 문제가 생기면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경비실에 들러 아저씨에게 간단히 집 문제를 상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주인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빙 둘러가 뚝딱뚝딱 집수리를 해주시곤 했습니다. 두 번째 집주인은 참 이상한 아저씨였습니다. 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저를 미스유, 친구를 미스김이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우리도 그를 미스터구라고 불렀죠. 후에는 너무나 이상한 사람이라서 미스터리구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불안 증세가 심해진 탓에 사람들을 만나길 꺼려했고, 빌라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증세가 심각해지자 미스터구는 스토커가 되어갔습니다. 우리의 출퇴근 시간을 기억해서 왜 늦게 들어오냐, 어딜 다녀오냐 묻고, 낯선 이가 빌라 현관문이라도 열면 창문으로 빼액 소리를 치곤 했지요. 그의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다음 집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세 번째 집주인은 동네의 터줏대감인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와의 임대 관계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오래된 집의 노후화가 심해 나그네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라기엔 여러 모로 부족함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네 번째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집의 부동산 계약 자리에서 마주한 새로운 집주인 분들의 인상과 함께 나눈 대화가 좋아서 앞으로 살 날이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안락한 집에서 우리가 편하게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이 들었지요.  


계약서가 담긴 파일을 들고 부동산을 나서는 길, 집을 한 번 더 보고 가겠다며 빌라로 향했습니다. 따사로이 비추는 햇살 아래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읊조렸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지금 사는 집과 계약을 만료하고, 필요를 구분해 짐을 정리하고, 대출 심사를 받기까지 일련의 일들이 저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 일들을 해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새로운 보금자리를 기대하며, 편안하고 따스한 동네에서 살아갈 우리들의 다음 여정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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