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세요?
나는 좋아하는데...
술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 대학을 입학하고 난 후인 것 같긴 한데, 너무 오래되어 가서인지 어렴풋하다.
대학을 들어가면 의례히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술을 사발로 마시던 그 때는 왠지 그게 좋은 전통인 것 처럼 느껴져서 괜히 돌고 있는 사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정신이 잠깐씩 들때면 내 어깨를 들고 있는 사람들, 등을 두드려 대면서 본인이 구토를 하지도 않으면서 우웩 소리를 더 리얼하게 내는 사람들, 그리고, 옷을 아주 잘 차려입고 거기에 신발까지 신은 채로 제대로 누워있는 나를 보았다.
그럴 때면 항상 술은 몸에 받지 않으니 그만 마셔야 겠다를 손바닥에다가 쓰고, 노트에도 필사를 하듯이 흘겨놓았었다. 그 노트를 잘 간직한 채 저녁에는 어김없이 막걸리에 파전을 걸치던 시절이 있었다.
술을 좋아해서였는지, 술 자리에 끼지 않으면 영원히 부르지 않을 것 같아서 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항상 술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에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내가 있었던 것 같다.
술을 사실 좋아한다. 술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술자리도 좋아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맥주 딱 한잔, 소주 딱 한잔, 위스키도 딱 한잔, 막걸리 딱 한잔씩이다.
그 뒤부터 마시는 건 전혀 맛을 느끼지 못하고 시원함을 느낄 겨를도 없다. 그냥 마시는 행위의 반복일 뿐이고, 점점 기분을 좋게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게 하는 의미없는 시간일 뿐이라고 느낄 때도 있다.
술자리는 참 좋아한다. 시끌벅적함이 좋았고, 한명씩 두명씩 모여드는 사람들도 좋았고, 주변에 술마시면서 서로를 힐끗힐끗 보는 것도 재밌었다. 술자리를 파하면서 서로 계산을 하겠다는 풍경도 참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계산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술과 술자리보다 사람이 그리워서 술자리가 그립다.
예전에도 물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술자리를 가졌지만,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술자리의 흥만 남은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사람과의 대화가 그립고, 그 그리운 대화를 만들어 주는 술자리가 그립다.
술자리없이 만나는 대화의 시간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고, 나 또한 그런 대화의 시간을 좋아하지만, 뭔가 모를 허전함과 하고 싶은 말을 숨겨놓는 듯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좋은 술자리가 더 그립다.
여기저기에서 술자리를 하자고 연락이 온다.
하지만, 모든 술자리에는 나가지 않는 것이 요즘 나의 모습이다.
가려서 나갈 줄 아는 그 어른스러움을 언제 장착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정중히 거절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기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좋은 술자리를 찾는다는 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많은 술이 아닌 적당한 술과 많은 대화의 황금비율이 때론 소맥의 황금비율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은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