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경제적인 협업관계
미래 가전에 대한 글을 몇년 째 혼자 써오면서 가전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워낙 가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가전이 가져다 주는 삶의 변화와 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활의 편리함은 물론, 삶의 질이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물론, 그만큼의 가치에 대한 고객들의 지불은 변함없이 올라가긴 하지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가치가 날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비 후 '멋진 경험'으로 치환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특정 가전회사의 제품으로 도배를 하지 않고, 여러 제품들을 두루 사용해 보는 고객의 한명으로써 모든 가전 회사들의 도전을 항상 응원하고 환영하고 있다. 모든 회사가 집안에 있는 모든 가전을 소화할 수도 없고, 소화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곤한다. 요즘은 발뮤다를 참 좋아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작은 영역의 차별화를 만들어 내는 발뮤다는 역시나 일본기업이었다.
기존의 제품을 최고로 만들어내는 것은 한국기업, 그리고 이제는 중국기업이 선두에 있지만,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내는 자리는 한국과 일본이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 같다. 한 때 엄청난 히트를 친 발뮤다의 토스트기는 토스트계의 에르메스라는 찬사를 받으며 입소문이 퍼져 집집마다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도 보편적인 가전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말을 경험해 보면서, 발뮤다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호텔이나 전문점에서나 먹던 데판야끼를 집안으로 들여놓은 플레이트나 소형 오븐, 바리스타를 만족시킬 만한 커피포트 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일본의 쯔따야 서점과 그 맥이 닿아있는 듯해 보였다. 일본을 방문하면 매번 방문하는 쯔따야서점은 예전 그 신선함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많은 서점에 변화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그런 혁신적인 시도가 소형 가전계로 퍼지면서 발뮤다라는 성공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발뮤다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면서 새로운 것이 없나 할 정도로 새로운 것에 목말라있다. 매번 나올 때마다 단순한 가전이 아닌 '혼이 깃든' 가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심미스러움의 최상위 레벨은, 기존 한국가전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무엇과는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 흔한 스마트 기능도 포함하지 않은 걸 보면, 가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영역에서의 독보적인 행보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보인다. 이런 가전영역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는 국내가전 기업으로서는 다른 많은 가전으로 더 승부를 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슈즈케어나 스타일러, 식물제배기, 맥주제조기 등의 시도들을 했으나, 매니아층의 호응 이외에는 대중적인 승리는 이끌어 내지 못했다.
요즘 자주 받는 메일 중 하나가,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을 위한 데이터 라벨링에 참여하라는 메일이다. 내용인 즉슨, 특정 분야에 인공지능 개발을 진행하는데, 대규모의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고, 그 데이터들은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들인데 그 데이터를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자격조건이 되는 사람'이 분류해야 하는 일이다.
일명, 데이터 라벨링(Data Labelling)이나 데이터 어노테이션(Data Annotation)이라고 하는데, 이런 데이터 분류작업을 통한 데이터들은 인공지능에서 알고리즘을 만들 때 필요한 학습용으로 사용이 된다. 그런 데이터 분류작업들을 시간당 30불에서 50불을 지불하면서까지 참여자들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 요청하는 회사들은 중국회사들이라 데이터 분류 작업을 하고 싶어도 개인정보에 대한 부분이 꺼림직해 참여하곤 있지 않다.
대부분의 국내 가전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보이고, 세계 1, 2등을 모두 휩쓸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굴기를 내세우면서 가전회사를 바짝 뒤쫒고 있고, 일부 영역에서는 앞서나갈 상황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예전에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보이는 그런 광경이, 중국이 한국을 넘어서기 위해 달리는 모습과 흡사하고, 실제로 경마장에서 말이 달리며 경쟁자를 추월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많은 시간을 공들인 스마트홈에 대해서는 글로벌 빅테크인 애플과 아마존, 구글이 폰과 쇼핑, 검색 시장을 시작으로 침투해왔던 홈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더 깊숙히 침투해 나가고 있고, 홈 안에서 밖으로의 전략을 펼치던 국내 가전보다 더 빨리 안과 밖을 잠식해 나갈 것처럼 보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는 그야말로 엄청난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에서 전쟁을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고, 국내 가전업체는 엄청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중에 전쟁이 시작되는 형국이 되어버리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는 한정된 데이터를 통해 고객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고, 여러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연결해 나가는 과정들을 반복해 나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 라벨링이라는 작업을 고객들에게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고객에게 직접 받는 취향 데이터'를 확보하고, 고객이 원하는 바를 더 빨리 습득해 나가는 방법이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자주 언급하지만, 고객들은 경제적인 면에 민감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만보기를 켜서 포인트를 받거나, 광고를 보고 포인트를 받는 작아보이지만 자신들에게는 소중한 행동을 경제적 이득으로 전환시키고자 하고 있다.
이런 고객의 생각과 기업의 니즈를 결함한다면, 기업의 빠른 데이터 확보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충성고객을 대거 확보하는데 성공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단순히 편의성, 가사노동감소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상호 경제적인 도움에 맞춘다면, 지금 구독서비스가 '목돈이 부담스럽고, 새로운 가전을 원하는' 고객을 만족시킨 것 처럼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거라고 본다.
문을 열고 고객을 받아들여 고객들이 더 참여할 수 있게 만든다면, 고객들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의 장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협업체계를 완성해 나갈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