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8월에 생일인 아이들을 모아 생일잔치를 열었다. 덕분에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걸어갔다. 여느 날처럼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12층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눌렀다. 9층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내리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내릴 12층에 도착했다. 아니다. 12층을 지나쳤다. 그리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는 12층짜리 아파트였는데, 엘리베이터는 12층에서 멈추지 않고 약 50cm 정도를 더 올라간 후에야 멈춰 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난 창으로 바깥의 모습이 약간 보였다. 하지만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놀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엉엉 울기만 했다. 잠시 후, 내가 집에 도착해야 할 시간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셨던 할머니께서 밖으로 나오셨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경비아저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얼마 후 엘리베이터 기사 아저씨가 오셔서 나를 밖으로 꺼내 주셨다.
그 일이 있은 후로도 한동안 그곳에서 계속 살았는데, 나는 혼자서는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매일 12층까지 걸어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가슴 아파하셨다. 하지만 12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이 나에게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결국, 부모님께서 묘수를 내셨다. 내가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한 번만 타고 내려오면 가지고 싶어 하던 운동화를 사주신 다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를 만큼 가지고 싶어 하던 물건이었는데도, 선뜻 타지 못한 것을 보면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첫 번째 경험의 충격이 상당한 했었던 것 같다.
양손을 꼭 쥐고, 기도를 하며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그런데 나보다 부모님이 더 기쁘셨는지 두 분 모두가 다음날 퇴근길에 운동화를 사 오시는 바람에 똑같은 운동화가 두 켤레나 생겼다. 운동화를 선물 받고 엘리베이터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조금씩 지워져 갈 즈음, 피아노 학원에 가려고 아파트 상가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다시 한번 갇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문도 없는 엘리베이터였다.
상가 경비아저씨께서 자리를 비우고 계셨는지 엘리베이터에 있는 비상연락 버튼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때문에 상당한 시간 동안 그곳에 갇혀 있었다. 실제 시간보다도 훨씬 더 길게 느껴졌던 그 시간 동안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점점 더 무서운 생각들로 번져나가고 있을 즈음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초등학교 때에만 해도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사고가 난 후에 한 동안은 계단을 이용하면서 엘리베이터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몇 번의 사고에도 신체적인 위해를 당하지는 않아서였는지, 나중에는 그런 시간도 필요 없어졌다. 그런데 사고의 정신적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좁은 공간에 오래 있을 때면 나도 모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출근 시간의 지하철 같이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면 한겨울에도 혼자만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어쩌면 무의식 속의 나는 아직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불안이나 공포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누구보다도 일찍 시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7살의 나는 어떻게 12층까지 매일 걸어 다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