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汝矣島)
재생 불능성 악성 빈혈. 수화기 너머로 들은 민정이 누나의 병명이었다. 빈혈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앞에 붙어 있는 재생 불능성이란 말이 너무 무섭게 들렸다. 누나는 바로 입원을 했고, 퇴원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여의도 성모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다. 때문에 집이 대전인 고모는 매달 누나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골수 이식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셔서 가족들과 친척들 여럿이 골수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쌍둥이이기는 하지만 이란성이어서 민구형의 골수는 검사를 해 볼 필요도 없었다. 비록 골수 이식 수술을 받지는 못했지만, 병원에서 정기적인 진료를 받다 보니 누나의 병세는 조금씩 호전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는 누나 혼자 병원을 다니는 것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까지 좋아졌다. 전에는 추석이나 설날 정도에나 만나던 사이였는데, 누나가 서울에 자주 오다 보니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누나의 친구들도 알게 되었고, 사촌누나가 아니라 친누나처럼 생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누나의 병이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 아니어서 내가 몰랐을 뿐이지 누나의 병세는 다시 악화되고 있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마침내 기회가 닿아서 20대 성인 남성이 기증한 골수를 이식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술 이전에 방사선 치료가 필요했고, 때문에 누나는 삭발을 해야만 했다. 또 그 때문에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당장은 수술의 성공과 누나의 건강 회복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에, 머리를 자르는 것이나 수술 이후의 상황은 그 시점에서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방사선 치료와 골수 이식 수술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퇴원하는 날 의사 선생님께서 골수 이식 이후의 삶은 신생아의 삶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면역체계의 정립을 위하여 영, 유아기에 하는 예방 접종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들을 해주어야 하고, 조심스럽게 새로운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졌던 누나는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수술을 받은 후 1년 정도의 주의기간이 지나자마자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누나의 열정 덕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힘들게 지낸 것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몰라도 3개월 정도 만에 모 은행 신입사원 공채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합격한 다음 주부터 바로 삼성동에 있는 그 은행 지점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얼마 후 은행원이 된 누나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때 본 누나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얼굴이었다. 그 당시의 누나에게 은행 업무는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나는 다시 보통사람들처럼 일상을 살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1년의 주의 기간에만 별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 후에는 별로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고모와 고모부도 오랜만에 두 발 뻗고 주무신다는 이야기도 누나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신생아의 삶처럼 정말 조심스럽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했던 것이 누나에게는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회사생활로 인한 피로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 같더니, 2개월 만에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합병증 때문이었다.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아무런 손을 써 보지 못했고, 누나의 새 인생은 1년 반도 채 못 되어서 끝났다. 장례식 날, 눈물만 흘리고 계신 고모와 고모부를 대신해서 내가 민구형과 함께 시신을 확인하고 옮겼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그 싸늘함은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화장장에서 들리던 오열 소리는 그곳이 마치 지옥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고, 그런 생각은 누나와 나 사이에 생긴 엄청난 거리감을 실감 나게 만들었다.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민구형이 아들을 낳아서 고모와 고모부의 외로움은 어느 정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 전화번호부 속에는 민정이 누나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고, 명절 때나 여의도를 지날 때면 누나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다. 또 연락만 하면 금방 통화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만나서 식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누나는 지금 이곳에 있지 않고, 다만 친척들이나 누나 친구들과 만나 누나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뿐이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 남는 더 큰 허전함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다. 여의도(汝矣島)는 그 말이 뜻하는 것처럼 남에게나 주고 싶은 섬, 누나를 잃게 만든 무서운 공간으로 내게 기억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