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시기이다. 매일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줄 색다른 활동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BTS가 와준다면 난리가 나겠지만, 학급별 예산은 40만 원이 전부다. 3월은 다가오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오늘은 잠깐이라도 노트북 앞에 앉아 아이디어를 내보기로 다짐을 했다. 하지만 생각뿐, 몸은 컴퓨터 앞에 앉기를 거부했다. 습관처럼 소파에 앉았고, TV를 틀었다. 유퀴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궁금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일이 하기 싫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교육과정은 내일의 나에게 맡긴 지 오래다. 밸런싱 아티스트? 처음 듣는 직업이다. 책상 위에 박카스 병이 하나 세워져 있다. 출연자가 그 병 위에 콜라병 2개와 보드카 병을 지그재그로 쌓아 올리려고 한다. 잠시 후 병에서 손을 뗐다. 말도 안 된다. 정말 병으로 탑을 쌓았다! 보고 있는 데도 말이 안 된다. 마치 예전에 본 데이비드 카퍼필드 아저씨의 공간이동 마술 같다.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사다리를 세울 거란다. 그것도 사람이 올라선 채로. 사다리가 균형을 잡을 수 있게 출연자가 사다리 위로 올라간 유느님의 자세를 약간 조정했다. 그러더니 정말로 사다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완벽히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보는 나도 놀라운데, 사다리 위에 서 있는 유느님은 훨씬 더 놀란 표정이다. 진짜 대박이다. 불현듯 교육과정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이런 걸 체험해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맞다! 아까 초등학교에서 재능기부를 하신다고 했었지! 근데 정말 그런 부탁을 드려도 될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은 어디로 드려야 하지? tvn에 전화를 하면 될까? 아니면 인스타그램? 진짜 연락을 드린다면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지? 누군가에게 재능 기부를 요청하는 게 처음이라 정말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되는지, 연락을 한다면 어떤 말을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 잠이 들었다.
출근길 차 안에서 계속 고민을 하다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인스타그램을 뒤져 DM을 보냈다. 코로나로 지친 아이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남겼다.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유명한 분이라 바쁘실 것 같기도 했고, 답장을 기다리다가 나중에 괜히 실망만 할 것 같아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2교시 수업 중에 문자가 왔다. 치토스 한 봉지도 공짜로 먹어본 적 없는 나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쉬는 시간에 통화를 했다. 공연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반 별로 가장 소외된 아이들이 무대와 제일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보고,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자리를 배치해달라고 하셨다. 그것이 이번 공연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마침 사는 곳도 우리 학교랑 가까워 금방 갈 수 있다고 하시면서, 현재 해외 공연 취소로 일정은 아무 때나 상관없으니 상의하고 연락 달라고 편하게 말씀해주셨다. 바로 부장님께 전화를 했다. “부장님, 어제 유퀴즈에 나오셨던 분이 저희 학교에 와서 재능기부를 해주신데요!!”
부장님, 그리고 교감, 교장 선생님과 학사 일정을 조율한 끝에, 공연 일정은 7월 7일 수요일로 정했다. 그리고 코로나 19 때문에 6학년 학생들 모두가 동시에 강당에 모일 수 없는 사정을 고려하여, 감사하게도 두 번의 무료 공연을 해주시기로 했다. 적어도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는 2021년이 코로나 19로 힘들었던 한 해가 아니라, 중심잡기라는 신기한 공연을 보았던 해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점점 7월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코로나 19 상황은 좋아질 줄을 모른다. 우리 반 아이들은 중심잡기 아저씨를 만나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