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많이 올까 봐 전화번호는 비공개예요.
아침마다 이 곳을 지났다. 처음에는 아내를 내려주고 출근하기 바빠 창밖의 가게들 모습을 살필 여유가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파란색 간판 위에 적힌 가게 이름은 '크로바'였다. 어떤 집인지 궁금했는데, 간판만으로는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네, 저는 일본어를 몰라요.)
어느 날, 아내가 크로바의 정체를 알아냈다. 일본식 이자카야였다. 아내가 좋아하는 '꼬치구이'도 유명하단다. 아내의 직장 근처이다 보니, 선배분들 중에 가 보신 분이 있었다. 퇴근 후, 차를 놓고 크로바 앞에서 아내와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맛집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 봐야 되겠지?
사장님 한 분만 계셨다. 우리는 바 형태의 테이블 가장 안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아내가 좋아하는 닭꼬치와 하이볼을 주문하고 메뉴판을 둘러보았다. 안주는 왜 이렇게 싼 거지? 파닭 꼬치는 2000원. 다른 메뉴도 7000원을 넘는 메뉴가 없었다. 가격에 부담이 없으니, 이것저것 시켜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사라다도 시키고, 오징어 튀김, 라멘도 시켰다. 혼자라 바쁘셔서 그런지 안주가 나오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나중에는 일본인 알바가 생겼다.)
드디어 닭꼬치가 나왔다. 가격에 비해 비주얼이 너무나 훌륭해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맛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뒤이어 나온 포테이토 사라다, 오징어 튀김도 모두 이 가격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맛이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순식간에 안주를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안주가 나오는 시간을 고려해서 추가로 주문해둔 가라아게와 토마토 슬라이스, 바지락 술찜으로 2차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우리를 제외하고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평소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아내가 나섰다. "사장님,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요?" 말리고 싶었는데, 아내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그 질문 덕분에 사장님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장님은 그 이유를 아주 쉽게 설명해주셨다. "네, 이번 주에 오늘 가게를 처음 열었어요." 그렇다. 동네의 숨은 맛집들처럼, 사장님이 문 열고 싶을 때만 여는 집이 바로 여기였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셈이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사장님 이렇게 셋이서 한 세 시간 정도 술을 마시면서 (물론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우롱차를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미술을 공부하셨고, 부산의 이자카야에서 요리를 배우셨고, 네이버와 카카오 지도를 보고 손님이 많이 올까 봐 전화번호를 연동해 놓지는 않으셨단다. 구글 리뷰에는 주인분이 일본인이라는 말도 있었고, 안주를 많이 시키면 사장이 안 좋아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 결과 한국인이셨고 (일본어에 능숙하고, 일본인으로 오해할 만한 외모를 가지고 계심) 바쁜 시간에 안주를 많이 시키면 나중에 주문해달라고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만의 아지트였는데, 술을 마실 시간이 되니 단골들이 몰려들었다.(아직 코로나로 인한 영업시간 제한이 생기기 전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다들 두 명, 세 명씩 찾아온 소규모 손님들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다들 익숙해 보였다. 들어오면서 사장님에게 안부를 물었고, 안주를 많이 시켜 사장님을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또 술이 마시고 싶으면 알아서 꺼내어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크로바가 오늘 문을 연 줄을 어떻게 알고 왔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단골손님 대부분은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 가게가 문을 열었는지를 확인하고 온 동네분들이었다. 그날, 인스타 계정을 처음 만들었다. 사장님이 우리 부부를 (정확히는 호기심쟁이 아내를) 기억하고 계셔서, 이후에는 인스타로 문의를 드리고 단골처럼 편하게 방문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저녁 7시에 문을 여는 곳이라, 9시 영업시간 제한이 생긴 이후에는 한 번도 못 갔다.) 조만간 단골 심야식당에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사장님! 전화번호는 정말 등록 안 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