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심지어 군 생활도 서울에서 했다. 다른 도시에서 생활을 하다가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각 지역 간의 격차 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내가 참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서울에서 부모님 집에 살다 보니, 내 집을 구하는 것에 대한 필요를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교육이나 취업 등의 기회에 있어 하나의 자산이 된다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자취방에 살거나, 기숙사 등에 살며 주거의 불편함을 느껴본 친구들이 내집 마련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더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많았고, 덕분에 서울에 살던 친구들보다 일찍 내집 마련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경제적으로 또다시 뒤처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기도 했다.
나도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활하며 나의 인식의 폭을 넓히고, 한 걸음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커져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이번에는 정말 내 소원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4-5년 정도 살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기회가 생기기를 그렇게 바라왔는데, 막상 그 기회가 생기니 고민이 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혼자였을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안전 등의 문제가 우려되기도 했다. 그리고, 휴직을 하고 남편을 따라가야 하는 아내의 마음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또,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두 달 정도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불안함과 걱정 때문에 한동안은 잠을 잘 이루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만 고민하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또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를 하느니, 일단 가보고 나서 후회를 해도 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8월 말에 시작하는 첫 학기를 앞두고, 8월 중순 즈음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햇살이 가득하기를 희망하며 지낸 지난 몇 년이었는데, 마침 도착한 플로리다의 별명이 'Sunshine State'라는 것을 듣고 마치 운명의 장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정말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플로리다에 닥친 허리케인 이달리아의 영향으로 개강 첫 주 수업은 전부 취소되었다. 그리고, 지도 교수님께 문자가 왔다. 바닷가에 임한 도시는 아니기는 하지만,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2-3일 정도 정전이 되는 경우가 흔하니 그동안 사용할 비상식량, 보조 배터리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동차에 기름도 가득 채워두었다가 대피 경보가 뜨면 다른 도시로 피난을 가야 한다고 했다.
차는 아직 없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비상 상황이 되면 데리러 갈 테니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비상 상황을 알리는 문자와 이메일이 자꾸 오니까 점점 불안해졌다. 그리고, 태풍이 온다고 해도 정전을 고민해 본 적은 없었던 서울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괜히 온 것 같았다. 목조 건물인 우리 아파트가 허리케인에 파손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지난 100년간 본 적이 없는 강도의 허리케인이라고 떠들어댔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준비했다. 대피 경보는 발령되지 않았다. 집 안에서, 불안에 떨며 허리케인이 너무 큰 영향은 미치지 않고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허리케인의 상륙이 예정되었던 아침시간이 되었고, 일어나자마자 유튜브 라이브 뉴스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있는 지역은 살짝 비껴갔다. 그런데,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바닷가 지역의 모습을 보니 언젠가는 저런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다. 이제는 다시 해가 쨍쨍하다. 39도를 넘나들던 기온이 조금은 낮아졌지만, 낮에는 33-34도 정도는 된다. 변화된 날씨처럼, 불안하던 마음도 조금은 안정되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기대감으로 시작했다가, 불안함이 엄습했던 첫 주였다. 그런데, 한 주를 지내고 보니 벌써 고마운 사람들이 아주 많이 생겼다. 허리케인의 피해를 염려해 준 사람들, 대비를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만약의 상황을 위해 만들어 둔 비상연락처 등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만든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서울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사람이었을까? 별로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의 상황에 더 공감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정말, 내 오랜 바람처럼, 바뀐 환경이 내 경험과 인식의 폭을 조금씩 넓혀주기 시작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