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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사무장 Oct 23. 2021

가까운 관계일수록 쉽게 무시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심리

인지부조화 이론

이번 장은 인간의 '주옥같은' 심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젊은 날엔 알아채기 어렵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깊은 실망과 환멸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주옥같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는 아니다. 이 말을 빠르게 여러 번 발음해보자.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TV 속 풍경을 잠시 살펴보자. 예능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엔 고정 출연자와 게스트가 등장한다. 고정 출연자들은 이미 친분이 있는 상태이므로 서로를 디스하고 막대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그러다 처음 보는 게스트가 나오면 급 정중(?) 해지며 조심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방송을 위한 재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 인간관계에 적용해보아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이 메커니즘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편한 관계 -> 함부로 대하기 쉽다 

어려운 관계 ->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무리 안에서 그나마 본인이 낫다는 희한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 심리는 즉, 같이 어울리는 사람을 은근히 깔보는 경향이 있음을 뜻한다. 나는 현실에서 이러한 경우를 수없이 많이 봐왔다. 사람들은 똑같이 어려운 일을 누군가 해냈을 때 그 대상이 조금 어려운 관계라면 "와, 너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하지만, 그 대상이 쉽고 편한 관계라면 "네가 이럴 녀석이 아닌데…. 운이 좋았던 것 아냐?"라고 말한다.



왜 친한 관계일수록 잘 인정해주지 않고 쉽게 무시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인지부조화란 평소에 우리가 믿고 있던 것과 실제로 보는 것 사이에 간극이 벌어졌을 때 생기는 심리적 현상으로, 대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 불편하여 그 간극을 메꾸려고 하는데서 갈등이 발생한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A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이 친구가 대단한 성과를 올렸네?'

'그런데 잠깐, A는 그만한 일을 해낼 인물이 아니야. 그럴 그릇이 못 돼.'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아하, A는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구나!'

'역시 그런 거야. 고작 A의 능력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을 리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차마 믿기 힘들지만 우리의 뇌에선 정말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나는 이 현상을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서 겪은 뒤 며칠간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



내 어머니의 형제들은 굉장히 우애가 두터운 편이다. 힘들 땐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어머니 형제 중 첫째인 이모는 나에게 가끔 평소엔 먹기 어려운 고가의 음식을 사주시거나 겨울이라고 따뜻한 점퍼를 선물해주신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빛은 항상 무언가 측은지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아마도 우리 부모님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벌이도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한 해 동안 칩거 생활을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썼다. 그렇게 1년 후, 마침내 책을 출판했다. 내 인생의 첫 책을 선물하고 소개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이모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모, 나 책 썼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쓴 글이라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그러나 책을 썼다는 말에 갑자기 이모는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뒤이어 나온 말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요즘 책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니?
나도 지금 출판사에서 책 써달라고 연락 오고 있어.



가슴이 저려왔다.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이모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글 쓰느라 수고 많았어."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 내겐 욕심이었을까? 그때 이모의 쌀쌀맞은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이 있지만, 나는 이 말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가끔 인간관계에서 누군가 '주옥같은' 심리를 비치는 모습을 보면 성악설(性惡說)을 믿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 인간은 미우나 고우나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을.



누군가 주옥같은 심리를 내비친다고 해도, 그 속 좁음을 품어줄 수 있는 바다와 같이 넓은 아량을 가진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분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각박한 세상살이가 조금은 더 여유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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