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충분히 어깨에 힘 빼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이 왔다.
8시간 숙면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있는데, 입가에 뾰루지가 3개나 났다.
평소처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컨디션이 저조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이니 중간점검이 필요했다.
우선 주말은 무조건 깨끗한 집에서 충분히 쉬는 게 최고의 힐링이라고 생각했지만,
금요일 저녁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세탁기만 돌리고, 씻고 대충 저녁을 먹고 드러누웠다. 생필품이 배송 온 택배박스를 접어서 정리하지도 않고 방치하고, 메모장과 필기구가 널브러져 있는 책상과 거실을 애써 무시했다.
침실도 다소 어지러운 상태였지만 나만 뽀송하게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바로 드러누웠다.
누워서 친구와 통하도 하고, sns도 키고 잠이 올 때까지 빈둥거리다가 12시가 다되었을 즘 설핏 잠이 들었다.
7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누워서 폰을 조금 만지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들었다. 자다 깨서 다시 잠드는 수면사이클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나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일어나고 싶은 만큼 누워있었다.
11시가 다 되어서야 커피 생각이 났다. 창밖이 어둡다 했더니 비가 오고 있었다. 비 오는 날 커피 좋지 하면서 일어났더니 방이 어지러웠다. 방을 나섰더니 더 개판이었다. 청결상의 위생적인 문제는 없지만 정리정돈 부분은 0점이었다. 그나마 그 와중에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널고 잔 나를 칭찬한다.
물을 끓이고 창문을 열었다. 비가 오는데도 공기가 서늘하지 않았다.
입지 않았는데 나와있는 옷은 대충 말아서 옷장에 쑤셔 넣고(기운 차리면 옷장정리해야지), 침구 세탁도 미뤘다. 어차피 내가 베고 잘 텐데 한주쯤 더 더러우면 어떤가. 대충 세안과 양치만 하고 물을 한잔 마시는데 책상이 너무 거슬려서 간단하게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발로 슥슥 밀면서도 그 시간에 정리하면 될 텐데 싶어서 웃겼다.
어떤 사람에겐 커피는 일의 시작이지만, 나에게 커피는 휴식의 신호다.
집을 정돈한 뒤에 마시는 커피는 최고지만, 돼지우리 한복판에서 마시는 커피도 나쁘진 않았다. 커피 한잔을 멍하게 다 마실 때쯤 브런치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력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환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비 덕분에 깨끗해진 공기 덕에 창을 활짝 열어 놓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어쩐지 세수할 때 거슬리는 곳이 없다고 했더니, 뾰루지가 어느덧 가라앉기 시작했다. 칼같이 자고 일어나서 씻을 때도 분비됐던 피지가, 11시간 넘게 방치한 기름 앞에서 무너진 것일까. 내 피부인데도 트러블이 생기는 기준을 알 수가 없다.
이번주엔 꼭 신발세탁을 셀프로 하고 싶었으나, 미뤄보기로 한다. 마침 비가 오니까 빨아봤자 마르지 않을 거라는 좋은 핑계도 있다. 만약 꼭 필요하다면 스트레스받지 말고 돈으로 해결해야겠다.
두 달 가까이 나를 컨트롤하며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도 마음도 잘 챙기고 있다고 여겼는데 늘 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늘 어지러운 집과 엉망인 생활패턴이라면 집을 정돈하고 일찍 일어나는 시간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어지러운 집에서 주말을 지내는 시간도 필요한가 보다.
루틴의 중요성도 알고, 나는 이때까지의 생활에 썩 만족하지만 강박감을 가지게 되면 나를 위해 생활을 챙기는 것이 아닌, 생활을 위해 내가 존재하게 된다.
어깨에 힘도 풀고, 내가 만든 수제 돼지우리 한복판에서 마시는 커피도 즐기고, 가끔은 햇살이 아니더라도 우중충한 하늘도 보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