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북한강 산책길이 있다. 이른 아침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금만 늦어도 주차할 곳이 마땅찮다. 물론, 텅텅 비었을 마트에 주차해도 될 일이지만 코스에서 조금 멀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좁은 골목을 밀고 들어간다.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가 때로는 편하거 느꺼진다.
오늘은 시간이 꾀 지났는데도 유달리 차가 많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목을 늘였다. 참 이상도 하지. 지하 주차장이나 터널 입구를 들어설 때는 꼭 고개를 숙인다. 이마에 와서 부딪칠 것 같은 불안감은 왜일까? 근거 없는 불안감. 알면서 꼬깃꼬깃 할머니 세뱃돈처럼 구겨 넣는 불안은 나를 세워 놓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번번이 속는다. 마찬가지다. 몇 발자국만 들어서면 알게 될 일을 미리 목을 늘인다고 보일 리 만무하다.
먼저 나온 친구가 구찌(애완견)를 안고 서 있다.
구찌는 저보다 몸집이 큰 아이를 만나면 지레 겁을 먹는다. 그래서 오늘같이 산책견이 많은 날은 아이를 내려놓지 못한다. 사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친구보다 구찌였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아빠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고. 그래서인지 내게로 달려오려는 구찌의 마음이 멀리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 오늘같이 사람이 많은 날은 안겨만 있어야 하는 구찌가 얼마나 안쓰러운지. 친구는 양팔이 묶인 채 걸어야 하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구찌가 맘껏 걸을 수 없는 것이 화가 난 모양이다. 평소보다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해선 여전히 관심 없다. 구찌의 산책에 문제만 없었다면 사람이 많다고 어디 화낼 친구인가. 십 년 노견이니 자식과 마찬가지지.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인데도 청년같이 정정하다. 주인이 얼마나 잘 키웠는지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단다. 예전에는 반려견의 평균 수명이 15년 이하였지만 지금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듯 반려견의 평균 수명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인이 나누어 주는 정서적 교감과 사랑이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 견생의 유일한 행복이 산책이라니 하루에 한 번은 그 행복을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다.
오른쪽으로 1km 정도를 걸어가면 문호리 리브 마켓이 열리는 곳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조용하지만 한 달에 한번 마켓이 열리는 날은 갖가지의 볼거리가 장사진을 이룬다. 시골 장터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 참으로 정겹다. 우리는 항상 그곳에서 유턴을 했다.
돌아서니 아무도 없었다. 차들이 많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냥 조금 천천히 돌아갔을 뿐이라고. 투덜거리며 열심히 앞으로만 가는 사이 뒤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더 살아야 돌아서지 않아도 볼 수 있을까.
친구는 구찌를 내려놓았다. 리드 줄을 길게 잡고 아이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한참을 종종걸음 치다가 멈추더니 무언가를 향해 짓기 시작했다. 양껏 꼬랑지를 세운 것이 필경 덩치 작은 만만한 놈을 만난 게지.
가까이 가 보았다. 축축한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곳에 달팽이가 숨어 있었다.
혀로 핥기도 하고 앞발로 살짝 건드리기도 했다. 힘자랑을 하려는 게 아닌가 보다.
달팽이는 재빠르게 피부 속으로 자신의 뿔을 숨겼다. 베일 듯이 날카로운 풀잎 뒤로 넘어갈 수 있는 건 달팽이 만의 특권이다. 뿜어놓은 진액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숨어버리면 구찌도 찾을 재간이 없다. 그것도 무거운 짊을 이고서 말이다. 구찌는 신기한 모양이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달팽이는, 제 집안으로 몸을 숨긴 채 최선의 방어를 하고 있다. 그것이 달팽이의 생존법이었다.
알아차린 친구는 리드 줄을 짧게 감고 구찌를 안았다.
“친구야 저 안으로 옮겨 줄래? 요놈들의 눈에 띄지 않은 곳으로 말이야.”
나는 달팽이를 옮기기 위해 풀잎 아랫단을 살포시 끊었다. 더 이상의 공포가 없도록 진동을 절제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