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단상(斷想)
호박나물과 가지나물 그리고 떡국
우리 집 꼬마는 호박나물과 가지나물, 무나물과 토마토를 먹지 않는다. 채소들을 고기와 함께 볶아놓으면 고기만 쏙쏙 빼먹고 카프레제를 만들어놓으면 생모차렐라 치즈만 쏙쏙 빼먹는다.
국 속에 든 대파를 슬그머니 빼놓기도 하고
감자채 볶음 속 물컹해진 양파채도 스리슬쩍 옆으로 치워놓는다.
그런 아이에게 편식하지 말라며 짐짓 엄한 척 눈을 홉떠보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두 손을 들고 만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우리 꼬마의 나이 때는 똑같이 안 먹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가리는 음식이 더 많았다.
특히, 떡국을 무척 싫어했다.
커다란 대파가 든 맑지 않은 탁한 국물도 싫었고 아무런 맛도 없고 찐득하면서도 질긴듯한 떡국떡을 씹는 것이 영 불편했다. 그래서 설날이면 나는 늘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었다.
그리고, 호박 나물의 설컹하고 물컹한 식감은 저작운동 서너 번에 진저리를 칠 정도로 싫었고 가지나물의 뭉근하고 들큼한 맛은 그 충격이 너무 커 다시는 입에도 대지를 않았다.
심지어 바나나와 홍시조차 싫어할 정도로, 무언가 질퍽이는 식감은 모두 질색을 했던 듯하다.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아이로 오래 있다가 어른이 되는 순간부터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래 소망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원래가 다 그리 되는 것일까?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
그 찬란하던 찰나의 청춘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많은 것이 바뀌어버린 나와 마주 서게 된다.
그렇다고, 변화한 나의 모습이 싫거나 슬프기만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지나온 시간의 흐름 속에 따라붙은 옅은 후회의 조각들이 가끔씩 슬플 뿐.
결론은,
나이를 먹으니 어린 날 그리도 싫어하던 떡국과 호박나물과 가지나물이 지금은 꽤 맛있다.
특히, 이제는 만둣국도 나쁘지 않지만 쫄깃하고 담백한 떡국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어린 날 그렇게 좋아하던 새콤한 귤과 콜라 대신 지금은 쌉싸름한 자몽과 생강차가 더 좋다.
그러니,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부족하다 슬퍼하지 말고 지금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부족한 빈자리에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한때는 그것들을 퍽 좋아하지 않았던가.
나이를 먹고보니 내 자식들과 어린 친구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도 그랬었지. 시간이 지나면 너희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겠지.
강제하지 말고 공감해 준다.
응. 엄마도 너희 때는 그랬어.
'그렇지만'이라는 단어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지만'을 쓰는 순간 공감은 그 힘을 잃고 마니까.
강제하지 말고 공감해 주며, 그렇지만을 쓰지 않는 대신 심플하게 권해만 본다.
왜?
먼 훗날 내 아이들이 내게
왜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왜 그만하라고 제어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을 때를 대비해서랄까?
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 역시도 부모님의 말을 징그럽게 안 들었고, 떡국과 호박나물과 가지나물이 그토록 싫었지만
나이를 먹으며 알아서 변화했듯이, 정성 들여 키운 내 아이들 역시 언젠가는 스스로 변하지 않을까?
퇴근길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눈에 띄게 저렴해진 애호박 세 개를 사 왔다.
그것들을 깨끗이 씻어 반달썰기를 한 후 들기름에 다진마늘과 새우젓을 넣어 볶으며 든 짧은 생각이 이렇게도 긴 글이 될 줄이야.
들기름 향내 고소한 호박나물에 절로 군침이 도는 저녁,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아빠가 지금의 이런 나를 보시면 얼마나 기가 차 하며 웃으실까.
아빠, 나 이제 호박나물도 떡국도 잘 먹어요! 아니 이제는 만둣국보다 떡국을 더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