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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진 Feb 18. 2024

귀국_01

투명한 유리 사이로 갈라져 비추는 빛들은 어느새 한 곳으로 모여 내가 앉은자리를 쪼아 내리기 시작했다.

압축을 3번이나한 내 안경 너머로 빛이 뭉쳐 눈을 멀게 하자, 

개미 한 마리가 불에 타기 싫어 발버둥 치듯이 나는 짐을 챙겨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다.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는 그 꼴이 꽤나 우스웠는지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지만, 아내도 자기 옆으로 빛이 쫓아오자 웃음을 멈추고는 부산스럽게 내가 옮긴 자리의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를 따라오던 빛이 우리가 가려하는 길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 것일지도 모르는 채

아내와 나는 4년 만에 부다페스트를 떠나 서울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푹 빠져 이야기를 나눴다.

"너랑 여기로 처음 나올 때만 하더라도 정말 여기서 살 수 있을까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

부다페스트 공항에서 물이 가장 싼 자판기에서 뽑은 탄산수를 한 모금 들이키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게, 우리는 같이 있으려고 하면 이렇게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야 하나 봐."

아내는 우리의 이런 생활이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물이 얼마 남지 않은 탄산수 병을 아내에게 건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이 얼마 안 남았네, 그거 마시고 비행기에서도 더 필요할 것 같으니까 한 병 사 올게."

아내와 더 이상 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물을 핑계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자판기까지 걸어서 5분 정도, 왕복으로 10분 정도 될 테니, 돌아오고 나면 둘 다 진정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조차 아내와 다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툰다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비행기에서 아무 말도 없이 11시간 갸랑 팔걸이를 기점으로 냉전을 치를게 뻔하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을 피하려는 유부남의 본능이 이번에도 먹히길 바랐다.


아내가 이런 생활을 싫어하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겠어?' 

아내와 다툴 때마다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같이 있으려면 별 수가 없었다.

세간 말로는 흙수저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수저 끝이 부러진 채로 간신히 자신의 삶과 나의 삶을 책임지셨던 아버지밑에서 자란 나와, 그나마 수저와 젓가락이 멀쩡한 집안에서 태어난 중진국 출신의 외국인이 꾸리는 삶은 낭만적이지 않고 가혹하다.

그렇기에 생존과 사랑을 같이 지켜나가려면 꽤나 처절하게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항상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나는 말없이 자리를 비우고

아내는 돌아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나를 바라본다.

검게 빛나는 눈동자 하지만 나를 등지고 바라보는 햇살 속에서는 따스해 보이는 진한 갈색의 눈동자.

처음 사랑을 고백했을 때보다 그녀의 눈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그 눈에 빠졌기에, 나는 항상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진?"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는 내 어깨를 누군가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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