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돌려 내 어깨를 두드린 사람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 이름은 무림이니 누가 불러도 진이라고 부를 일은 없으니까.
심지어 영어이름도 LIM이라고 부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역시나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불렀던 여자는 전혀 당황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그녀가 알고 있었던 '진'이라는 사람인 것처럼, 얇고 길게 뻗은 눈사이로 나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꼈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답했는지 그녀가 먼저 서운함이 담겨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또 말을 걸었다.
"계속해서 모르는 척할 거야? 나잖아 네 친구 미란..."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내가 정말로 이 사람을 잊어버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기억 속의 캐비닛들을 모두 꺼내봤지만 나는 확실히 이 사람을 모른다.
상황이 더욱 어색해지기 전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하는 척하며 그녀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키는 160 정도 되어 보이고, 태닝을 할 때 손바닥은 빼먹은 건지 몸은 어두운 색이었지만 그녀의 손은 덜 어두워 보였다. 아마 태닝을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밝은 피부톤이었을 것이다.
운동을 꾸준히 했는지 어깨는 나보다 말려있지 않았고, 힐끗 나의 반응을 살피며 보는 그녀의 시계는 러닝앱들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아 운동에 진심인 듯해 보였다.
아마 피부가 탄 것도 태닝을 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러닝을 하다 보니 피부가 탄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계속해서 그녀를 쳐다보다가 아내에게 걸리면 작살이 날 것 같아 시선을 거두고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쪽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무림이고요. 다른 분이랑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사람 얼굴을 잘 헷갈리는 편이라, 착각했네요...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혹시 DEI 1237 비행기 타시나요? 저도 그 비행기 타는데 한국인 분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네, 저희도, 아! 제 아내랑 같이 그 비행기 타기로 되어있어서요. 아내도 한국인은 아니다 보니 아마 그 비행기에 한국인은 저희 둘 뿐이겠군요."
"그렇겠네요, 이 시간 비행기를 타는 손님들은 생각보다 없으니까요. 저는 평소에 늦는 걸 싫어해서 엄청 빨리 입국장으로 들어왔는데, 잠깐 시간 괜찮으시면 아내분과 같이 차 마시며 이야기나 나눌 수 있을까요?
이미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아내도 한국어를 잘한다며,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잠시 그녀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아내를 데리러 아내가 앉아 있던 B3번 게이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