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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물 Aug 23. 2024

아무도 모르게 홀로 앓는

-어떤 감정에 대해.



나는 당신 앞에 서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요. 작은 입술 밖으로 꺼내기에는 내 감정이 훨씬 거대해서, 나 혼자 목구멍 아래 조그만 언어로 잘게 부수고 부수다 그대로 삼켜지고 말아요.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정의 말들은 그대로 삼켜져 내 심장께로 내려가 빈틈없이 가득한 마음을 먹고 다시 몸집을 키워요. 이것들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계속해서 삼켜진 감정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내 가슴과 목 그 사이 어딘가를 꽉 막고 있어요. 이제는 입 밖으로 내뱉고 싶어도 나오지 않는 커다란 감정에 목 아래로 끙끙 거리기만 하네요. 열감기를 앓는 것 마냥 심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이 후두를 타고 올라와요. 언젠가 감정의 잔열이 혀 밑까지 넘실거리다 불완전한 말로 게워낼까봐 두렵기만 한 용기 없는 나는, 오늘도 말을 고르고 고르며 앓고 있어요. 오랜 시간 앓고있는 이 감정으로는 아무 말 하지 못하겠어요. 갈수록 무거워져만가는 감정 덩어리가 내 숨을 더 가쁘게 막아버리기 전에, 당신이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이 언젠가 눈치를 채더라도, 이 감정이 꺼낼 수 조차 없을만큼 커다랗다는 건 아마 모를거예요. 어쩌면 말해지지 않는 한 평생 모를 거예요.


-아무도 모르게 홀로 앓는.




마음을 앓는다는 말을 아는가? 


어떤 마음이든 사라지지 않고 삼켜진다면, 처음엔 조그맣던 그 마음 하나가 삼켜지고 삼켜지기를 반복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곤 했다. 커다래진 마음은 더 이상 조그만 입밖으로 나올 수 없어 가슴속에서만 앓게 된다. 꺼내고 싶은 마음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참 답답하기도, 참 아픈 일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 그만큼 커다란 마음이 가슴을 꽉 막고 있는 탓이었다.


짝사랑이든, 비밀을 터놓는 일이든, 사과이든, 싸움이든. 무엇이든 나만이 아는 감춰둔 내 마음을 꺼낸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두려움이 참 많은 나는 용기 없는 겁쟁이였던 순간이 꽤나 많다. 쉽게 풀릴 일도 입 안으로 삼키며 스스로의 삶을 꽉 막곤 했다. 사랑이든 사회적 관계든 무엇이든. 


내 마음 속에서는 꺼내지지 않은 말들이 언제나 참 많았다. 어쩌면 나는 청소년기부터 20대의 많은 시간들을 항상 어떤 마음을 앓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꺼낼 수 없는 마음이 무거워질때면, 항상 글을 썼다. 중학생 때부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끌어 안으며 이불 속에 홀로 들어가 내 보물 1호였던 전자사전 메모장에 내가 앓고있는 감정의 단어들을 토해내듯 적어내곤 했다. 그 때 썼던 글들을 통째로 잃어버렸지만, 아마 섬세한 표현들이 꽤나 많았을 것 같다. 지금은 그 시절의 매일같이 꽉찼던 마음을 따라갈 순 없지만, 지금도 여전한 게 있다면 온전히 꺼내지지 않는 어떤 마음을 앓을 때마다 글을 쓴다는 것이다.


가득찬 마음이 펜심이 되나보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언젠가 펜으로 비워낸 내 마음을 힘껏 끌어안는다.

빈 마음도 무릎처럼, 이불처럼 두 팔로 한가득 끌어안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의 빈 마음을 앓으며, 당신이 삼킨 마음 안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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