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잼
처음에는 제과가 취미였다. 주로 케이크나 쿠키를 만들었다. 2016년 겨울에는 라즈베리 잼이 들어간 무스케이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잼에 관심이 생긴 것은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씨앗을 거르기 위해 꽤 고생한 기억이 난다. 그래도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그냥 잼만 만들고 있다. 여러 재료를 섞다 보면 동심이 희미하게 속삭이는 기분이다.
잼은 보통 과일로 만들지만, 재료를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채소나 견과, 우유도 잼이 된다. 그중 밀크잼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특별한 향을 가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 그레이 나 말차의 경우 이제 꽤 대중적인 스타일이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 여러 가지 티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접근성 낮은 소재 탓일까? 가향차(Flavored Tea)는 생각보다 인지도가 낮은 느낌이다. 누군가 실험정신을 발휘했기를, 그러나 아무런 사례도 찾을 수 없었다.
찾다 못해 결국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유는 그렇다 치고 생크림은 생각보다 비싸다. 그걸 감안하고 실패를 각오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성과가 좋았다. 잼에 담긴 향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마음에 들어서 ‘러시안’이라고 이름까지 붙였다.
러시안 밀크잼은 얼 그레이 밀크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얼 그레이 티 대신 러시아 가향차(Flavored Tea)를 사용할 뿐이다. 러시아에는 향을 첨가한 홍차가 많다. 이 향을 밀크잼에 옮겨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다만 향이 특별하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이번에 사용한 바닐라 크랜베리의 경우 달콤하면서 동시에 아련한 민트향이 담겨있다. 희미해서 거북하지 않은 수준이다. 크랜베리가 첨가되었지만, 산미가 없다. 그래도 민트향 덕분에 느끼하지 않다. 빵이나 쿠키에 얹어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아이스 밀크티도 괜찮은 것 같다. 우유의 고소한 풍미에 깃든 단맛 뒤로 상쾌한 잔향이 남는다. 여름에 잘 어울리는 맛이다.
나는 일반적인 레시피를 따라 우유 1ℓ에 생크림 500㎖, 설탕 200g 정도를 사용한다. 단맛을 선호할 경우 설탕 비율을 늘려도 상관없다.
티백을 우리는 타이밍도 다르지 않다. 우유와 생크림, 설탕을 넣고 불에 올린 다음 기다린다. 가장자리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티백을 두 개 넣어준다. 얼 그레이의 경우 티백을 개봉해서 넣기도 하는데,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잼을 졸일 때 가장 약한 불을 사용한다. 레시피에 따라 중약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중불 이상은 대참사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니 자제해야 한다. 밀크잼을 만들어 봤다면 한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우유는 순식간에 끓어 넘친다.
약불을 사용하는 것은 이런 참사를 방지할 겸, 차를 효과적으로 우려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약불을 사용하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계속 살펴보며 저어주는 것이 좋다.
아마 처음 만들 때 가장 의아한 부분이 밀크잼의 농도일 것이다. 일반적인 잼은 끓는 상태에서도 대략적인 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밀크잼은 끓고 있어도 약간의 점도가 느껴지는 정도다. 불에서 일찍 내리면 스프레드 수준의 점도가 된다. 용도에 따라서 나쁘지 않은 결과다. 문제는 늦게 내렸을 경우다. 땅콩버터처럼 꾸덕꾸덕해질 수도 있고, 최악에는 캐러멜이 된다. 만들다 보면 거품 질감이 달라지는 순간이 온다. 이 지점을 전후로 불에서 내려야 한다.
적절하게 졸여진 밀크잼의 질량은 약 500㎖ 정도다. 작은 유리병 두 개 정도를 채울 수 있다. 찻물이 들어 파스텔 톤 부드러운 베이지색을 띤다. 여기에는 황금색 뚜껑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밀봉한 잼은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유통기한이 과일잼보다 짧다. 늦어도 석 달 안에 소비해야 한다. 보관기관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편이 양 조절에 용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