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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Jun 21. 2022

두 눈 고요한 밤하늘처럼 깃든 히말라야의 신

트레킹 코스는 여유로웠다. 우리는 급할 일이 없었다. 나흘 동안 올라갔다가 다시 이틀 만에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히말라야에는 산맥 곳곳에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숙소로 산을 건너 이동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아마 하루에 5~6km 정도 걸었던 것 같다.


간드룩(Ghandruk)을 거쳐 촘롱(Chomrong)으로, 시누와(Sinuwa), 밤부(Bamboo), 데우랄리(Deuali)……. 이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이국적이면서도 묘한 느낌이 드는 발음이었다. 따로 의미를 알아보지는 않았다. 들었는데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뜻밖의 단어라 여운이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숙소는 산정의 운치를 간직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대신 모든 공간이 낡고 허름했다. 그러나 성수기에는 그마저 얻기 어렵다고 들었다. 결국 식당에서 식탁을 이어 붙여 하룻밤 묵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딱딱한 잠자리에서 밤을 보낸다면 다음날 산에 올라가는 내내 몸이 무거웠을 것이다. 


나와 일행은 여기에 대해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뜻밖의 장소에서 밤을 보낼 일은 없었다. 가이드 덕분이었다. 그는 꽤 유능해 보였다. 아마 마을마다 정해진 숙소와 제휴를 맺고 활동하는 것 같았다.


숙박업은 지역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세상에서 관광객만큼 너그러운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여럿이서 나누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을까. 그곳에서 신규 입주는 민감한 문제라고 했다. 텃세가 심하다고 그랬나. 아마 자연인에 관한 한담을 나누다가 들었던 것 같다.


문득 관광객이 없다면 주민들이 더 행복했을지 궁금해졌다. 지나쳐 온 마을마다 무언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마 관광객을 위한 시설 증축이었을 것 같다. 도서산간 지역 중에서도 가장 높은 히말라야였다. 건축용 물자를 사람들이 손수 짊어지고 갔을 것이다. 앙상한 콘크리트 골조 너머로 주변에는 계단식 논과 밭이 보였다. 아름답지만 가혹한 터전이었다.



한편 동물들은 이런저런 소요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는 동물이 꽤 많다. 떠돌이 개는 물론이고, 당나귀, 염소, 닭, 원숭이와 양 떼를 봤다. 그들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개들은 관광객과의 동행을 일종의 취미로 여기는 듯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원하나보다 싶었다. 나와 일행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건네줄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들은 우리를 신뢰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그것이 신뢰라기보다 박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나귀나 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조용하게, 혹은 나지막한 소리로 무언가 웅얼거리며 목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조급함이나 불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눈이 검은색 커다란 물방울처럼 보였다. 먼 곳의 반짝임 같아서 속절없이 시선을 빼앗겼다. 눈이 마주쳤을 때는 한낮이었다. 쨍쨍한 날씨였지만, 머릿속에는 밤하늘이 떠올랐다.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히말라야는 신들에게 봉헌된 산이라고 했다. 얼핏 신들이 봉우리에 내려앉아 휴식을 취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높은 곳에 앉아서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을까. 내 생각에 그들은 거기 없을 수도 있다.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멀리 마차푸차레(Machapuchare)가 보였다. 아득하게 솟아있는 봉우리가 눈에 덮여 창백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더워서 땀에 젖어 있었다. 덕분에 마차푸차레(Machapuchare)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외로워 보이는 봉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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