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잼
요즘 내 친구들은 취미가 없어 고민이다. 생각해보면 슬슬 번 아웃이 올 즈음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는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겼다고, 그때 우리는 참 즐거웠다고, 사랑이 재미있을 때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못내 서글프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나요? 노화로 미끄러지는 가파른 내리막길 위에 우리는 젊어지려고 발버둥 친다. 아무것도 재미가 없다는 건 어쩌면 나이 들어 가는 일이다. 할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지친 직장인에게 기력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쉬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럴수록 더 악화한다는 점이다. 시간은 치료하지 않는다. 응고시킨다. 지날수록 더 무겁고 질기게 엉겨 붙는 이것을 우리는 후회라고 부른다.
젊어서 하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언제나 시도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가만히 있다가 한숨 쉬는 것보다 낫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나중에도 결국 못할 확률이 높다. 품절 임박이라는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
사키망 과일잼도 그런 충동 끝에 만든 잼이다. 나는 잼을 배합할 때 보통 궁금증에 의존하는 편이다. 이런 조합은 어때? 사과로 아삭아삭한 식감을 주자. 망고의 달고 시원한 맛이 베이스가 되겠지? 키위의 새콤함이 잘 어울릴지도?
사과 하나(약 300g), 망고 300g, 키위 400g, 설탕 350g만 준비하면 답을 알 수 있다. 먼저 사과는 주사위 모양 약 0.5㎜로 썰어놓는다. 키위도 마찬가지 주사위 모양으로 썰되 1㎜ 면 충분하다. 이때 씨앗을 갈아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루가 된 씨앗 때문에 흑임자를 넣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망고는 생과일일 경우 적당한 크기로 썰어준다.
이제 과일과 설탕을 한데 넣고 섞으면서 끓여준다. 항상 그렇지만 너무 강한 불로 하면 탈 수 있다. 중간 불 정도에서 끓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다.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생기고 가장자리에 기포가 올라온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줄여준다.
올라오는 거품을 모두 걷어주는 것이 좋다. 과일로 잼을 만들 경우 대부분 거품이 올라온다. 거품은 계속 끓여도 사라지거나 잼과 섞이지 않는다. 식감도 별로지만 미관상 제거해주는 것이 깔끔하다.
사과나 키위로 잼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후반부에 이르면 잼이 폭죽으로 바뀐다. 미친 듯이 튄다. 그대로 두면 일대가 잼 방울 범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계속 저어주자니 내 손이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불을 최대한 줄이고 채망을 덮어둔다. 가끔 틈으로 잽싸게 주걱을 밀어 넣어 저어주면서 농도를 조절한다.
졸이다 보면 하얗던 사과가 반 정도 투명해지는 순간이 온다. 내 경우에는 보통 이 시점이 왔을 때 불에서 내린다. 다만 위에 수분이 찰랑거릴 정도면 계속 졸여주는 것이 좋다. 강한 불로 잽싸게 졸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러면 사과가 거의 익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게 오히려 좋을지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 없다.
완성된 사키망 과일잼에서는 가장 먼저 키위의 새콤한 맛이 느껴진다. 그 뒤를 따라 망고의 시원스러운 단맛이 따라온다.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므로 썩 잘 어울리는 맛이다. 여기에 사과가 아삭아삭한 식감을 주어 꽤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이삭 풍의 토스트를 만들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따로 소스를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잼과 머스터드만 발라줘도 맛이 좋다. 딱히 시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9월 말에 추천하고 싶은 잼이다. 햇사과가 나온 것을 보면 참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