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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May 05. 2024

마음자리를 키워가는 중입니다.

마음여행




딸아이가 3살 때 신랑이 직장을 옮기면서 2년간 주말부부를 한 적이 있었다. 빠와 함께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늘 함께하던 아빠가 없으니 그 빈자리가 나에게도 딸에게도 너무나 .


그렇게 주말에만 만나는 가족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아프고 말았다. 난소에 있던 혹이 터져서 저혈압 상태로 응급수술을 해야 했다.


내가 아픈 것보다 엄마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세 살짜리 딸아이가 먼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내 딸을 걱정하고 우리 엄마는 나를 걱정했다. 엄마는  핀고정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한달음에 나에게 달려오셨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내가 아프니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직장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픈 와이프를 두고 멀리 가야 하는 신랑에게도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직도 수술이 끝나고 나온 날 밤 내 배에 달려있는 피주머니를 보던 신랑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 전화로 목놓아 울며 엄마를 찾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생생하다.

수술 후에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니, 아이를 보살필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계속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말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를 쳐다볼 때도...

이게 틱인가...?

집 근처 언어치료센터에 가서 언어발달 테스트와 함께 그림 심리테스트를 받아보았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언어발달이 또래에 비해 빠르고 기질이 예민한 편이라고 했다. 그런 아이들은 조그만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중요한 건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눈 깜빡임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아이의 상황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던 나에게 원장 선생님께서 조용히 물으셨다.



어머니께서는 행복하신가요?



그 질문 한마디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힘들었다. 몸도 힘들었고, 마음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너무 예민했고, 너무 슬퍼했던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한 신랑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싶었다.


어쩌면 그게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면 힘들다고 좀 내색해도 괜찮건만, 나는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그렇게 늘 '척'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아프면 아프다고 내색도 좀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도 좀 부릴 줄 아는 게 건강한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엔 나 자신의 문제였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세상이라는데, 그런 세상이 힘들어하니 아이도 힘들어했을 수밖에.

그 뒤로 한 달 정도 지나지 않아 아이의 눈 깜빡임은 서서히 사라졌다. 2년간 주말에만 아빠를 만나면서 우리 가족 모두 조금 더 성장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아 갔다.








2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정리하고 우리는 함께하기로 했다. 신랑은 집 근처 새 직장을 구. 마음먹은 대로 새로운 직장을 구해 옮긴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2년간 떨어져 지낸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함께 힘들어하기도, 아파하기도,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며 그렇게 우리 가족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러나 신랑의 직업적 특성상 출장을 피할 수 없었고, 이번엔 미국으로 3개월이라는 장기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신랑도 딸아이도 나도 3개월간 못 본다는 것에 대해 너무도 속상해했다.


모든 선택들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어떤 면을 바라보며 어떤 태도를 취할지 오롯이 우리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부정적인 부분들만 바라보며 슬퍼하고 고통스러워만 할 것인지, 긍정적인 부분들을 생각하며 변화하고 감사할 것인지.


헤어짐이라는 상황 속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한다.


아빠가 출국하는 날 새벽 딸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 잘 다녀와야 해..."


아빠목을 끌어안고 울먹이는 딸아이를 보며 나도 울고 신랑도 울었다. 아빠가 13시간 비행 후 시카고 공항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 딸아 아빠가 잘 도착했다는 영상통화를 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하루, 이틀, 삼일...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애틋함도 무심히 흘러가는 듯 보인다. 서로의 자리와 시간 속에 적응해 가며 필연적인 선택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해 본다. 예전처럼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내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지 않으려 노력해 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하고, 슬픈 날엔 조금 울기도 하고, 보고 싶은 날엔 한없이 그리워하기도 하며...








딸아이와 함께 김유강 작가의 <마음여행>이라는 그림책을 읽게 되었다. 마음을 잃어버린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찾아 여행하는 도중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모든 모험 뒤에 자신의 마음을 찾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작아져서 퍼한다. 그런데 사실 마음이 작아진 게 아니라 마음의 자리가 커진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맞이할 때, 혹은 고통과 슬픔을 속에서 느끼는 공허함이 사실은 우리의 마음자리가 커져가는 과정이 아닐까.


3개월이라는 헤어짐 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의 마음자리를 키워가는 마음여행 중이다. 





김유강 작가의 <마음여행>중에서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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