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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Mar 21. 2024

저 혹시 납치되는 건가요?#1

ep.1

26살, 그 당시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마흔이 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아주 귀여워서 코웃음이 나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는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모두 대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집안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알바를 시작으로 청년일자리 지원사업의 일환인 도서관 사서로 2년간 일하였다. 그때는 아마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대학을 다니는 게 꿈이었던 것 같다. 학에 가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보다 어느 대학을 가는지가 중요했기에 두 번의 수능을 더 치고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렇게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는 집 근처 대학에 진학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빠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외국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가 일본사람이랑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토록 싫었던 아빠도 아주 조금은 멋져 보였다. 그런 나를 잘 알던 엄마는 나에게 중국학과를 가보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중국학과를 지원했다. 그렇게 중국어를 1도 배워보지 않은 23살의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내 마음속 숨어있던 열정을 찾았다.


처음 배워본 중국어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흘려듣기만 했던 발음들을 직접 배우고 말하고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렇게 2년을 열심히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대만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전공교수님들께서는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으로 유학 가기를 권유하셨으나, 2년간의 학점을 포기하고 대만으로 가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을 선택했다. (사실 이 선택에 대해서 대만에서 학교를 다니며 아주 사무치게 후회하게 다.)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속 불씨가 꺼져버려 다시 이런 용기를 낼 자신이 없어질 것 같았다.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던 날 공항에 함께 마중 나온 엄마에게 세상 쿨하게 손을 흔들며 출국장으로 향했다. 인사가 길어질수록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씩씩하게 헤어지기를 선택했다.


2시간 반을 비행해 도착한 난생처음 밟아본 타국인 대만의 습기와 더운 공기가 나를 감쌌다. 짐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나온 게이트에선 미리 신청한 국제기숙사 픽업서비스 기사님이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셨다.


"你好。"

(니하오.)


자기를 따라오라는 짧은 손짓에 기사님을 따라 공항 주차장으로 향했다. 회색 스타렉스 봉고차에 나 혼자 올라탔다.


'이게 맞는 건가... '


왠지 모르겠지만 무섭고 두려웠다. 마치 영화에서 본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직접 겪고 있는 기분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대만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


내손에는 로밍도 해가지 않은 핑크색 아이스크림 폴더폰이 쥐어져 있었다. 마치 이 폰이 작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만지작 거렸다. 스마트폰이며 카카오톡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9었다.


한참을 달리니 대만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어가 적힌 빨간색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우와... 내가 오긴 왔구나...'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났다. 이제 기숙사에 거의 다 왔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계속 달리던 봉고는 어느새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먼가 잘못된 것 같았다.


"저... 기사님 지금 국제 기숙사로 가는 게 맞는 거죠?"


"對啊~"

(뚜에이아~)


'맞다'는 짧은 대답뒤에도 내가 탄 회색봉고차는 한참을 산길을 올라갔다. 아니 이런 곳에 기숙사가 있긴 할까 싶었다. 터지지도 않는 아이스크림 폴더폰을 펼쳐 엄마와 전화통화 하는 시늉을 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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