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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Mar 28. 2024

저 혹시 납치되는 건가요?#2

ep.2



나는 도대체 무슨 용기로 아는 사람도 없는 대만에 홀로 그것도 핸드폰 로밍도 지않고 온 것일까? 공항에서 유심칩이라도 사서 끼울 생각은 왜 못했을까? 국제기숙사를 향해 가는 회색 스타렉스 봉고차 안에서 수만 가지의 상상으로 공포를 경험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국제 기숙사까지 실제로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는데 체감시간은 10시간도 넘은 것 같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산 중턱쯤 올랐을 때 차가 멈췄다.


"학생, 국제기숙사에 도착했어요."


"아, 네..."


1시간가량 앉아있던 봉고차에서 내리자 내 엉덩이와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오래된 병원 같기도 한 외관의 국제 기숙사 로비로 들어갔다. 아직 방심할 수 없었다. 흠칫거리며 앞뒤 양옆을 돌아보면서 경계태세를 갖춘 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내데스크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 한분과 젊은 여자분이 앉아서 나에게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환영해요."

(歡迎光臨 환잉꽝린)


'휴... 다행이다. 이상한 곳은 아닌 것 같아 보이네...'


로비 옆쪽에 있는 응접실 같은 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보이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내가 신청했던 옵션들을 확인하고 환전해서 들고 간 대만돈으로 한 달 치 방값과 공항픽업 서비스 이용비를 지불했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젊은 여자분이 내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내가 신청한 방은 화장실이 있는 2인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메이트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책상에 앉아있었다.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 룸메이트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리어에 있는 짐을 풀지도 않은 채 침대 끝에 털썩 앉았다.


'도착했구나...'


호기롭게 뒤도 안 돌아보고 엄마와 헤어졌던 나는 한국을 떠난 지 4시간이 지나 대만에 도착해 있었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일단 엄마에게 도착했다는 전화를 먼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았으면 와이파이만 연결해서 카톡으로 도착 소식을 알리고 페이스톡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로비에는 공중전화가 있었고 동전을 바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잘 도착했어..."


"래 잘 도착했구나... 고생했어 우리 딸..."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뒷말을 바로 이을수가 없었다. 나오려는 울음을 꾹 누른 채 내일 시내에 나가서 휴대폰을 개통하면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더 붙잡고 있으면 그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 같았다.


나의 첫 번째 룸메이트였던 토모코는 30대 초반의 일본여자였다. 방으로 돌아와 넋이 나가있는 나에게 밥은 먹었는지 주변의 마트는 어디 있는지 약간의 중국어와 약간의 영어를 섞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꽤 큰 마트도 옆에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높은 산중턱이었지만 도로가 잘 닦여있었고 마트도 있고 아파트와 빌라들도 있었다. 트에서 당장 필요한 샴푸와 바디워시 욕실화를 샀다. 먹을 것을 고르고 싶었는데 도무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 그냥 다시 기숙사방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챙겨 온 햇반을 데워 엄마가 볶아준 소고기 고추장에 맛김을 싸서 먹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아... 대만이지...'


내가 대만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공항에서 기숙사로 오는 길에 너무 긴장했던 터라 밥을 먹고 나니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응? 뭐지 이 축축함은?'


파란색 천으로 쌓여있는 무거운 솜이불은 물기를 짜지 않은 것처럼 축축했다. 침대매트리스 커버도 축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도 뽀송함이라고는 1도 찾을 수 없는 축축함과 습기에 둘러싸여 대만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무덥고 습하고 축축한 2009 6월의 대만이었다.





사진출처: 타이베이 국제기숙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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