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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Apr 18. 2024

공차(貢茶)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더라면.

ep.5

 



26살, 나에게 대만은 모든 것이 처음투성이었다. 비행기를 탄 것도 처음이었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본 타국에서 혼자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생경하고 처음 접해보는 것들로 나의 26살 여름이 가득 차고 있었다.


언어중심을 다니면서 가장 재밌었던 점은 수업시간에 배운 중국어를 생활 속에서 바로 적용하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운 날이면 수업이 끝나고 곧장 카페로 달려가 배웠던 말들을 사용하고는 했다.


워 야오 이뻬이 삥 메이슬.

(我要一杯冰美式。/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카페직원이 내 말을 알아들었을 때의 그 희열감이란 너무나 짜릿했다. 여기서 더 심화학습을 하고 나면 매장에서 먹을 것인지 테이크아웃할 것인지, 얼음은 얼만큼 넣을 것인지, 당도조절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대만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것은 빠른 속도와 정확성이 요구된다. 더운 나라인 만큼 음료의 종류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데다 퍼스널옵션 같은 선택사항들이 너무도 다양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 공차라는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대만의 음료문화에 익숙하지만 그 당시 나는 정말이지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신세계를 경험하고는 했다. 무방비 상태로 주문대에 섰다가는 더운 여름 길게 대기줄을 서있는 뒷사람의 눈치가 보이기 십상이었다. (사실 대만사람들은 여유롭고 너그럽다. 유독 한국사람들만 빨리빨리 하고 눈치 보긴 했지만...) 그렇기에 주문 전에 내가 원하는 옵션들을 중국어로 수만 번 되뇌고는 했다.


워 야오 이뻬이 닝멍홍차, 츄에삥, 우탕, 따이조우.

(我要一杯 檸檬紅茶, 缺冰,無糖,帶走。 얼음이랑 설탕 없이 레몬홍차 한잔 테이크아웃 할게요.)


음료의 얼음과 당도를 조절할 수 있다니. 뭔가 나만의 음료를 제조해 주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주문하는 재미에 들려서 갖가지 음료를 주문해서 맛보고는 했다. 그러다 내가 발견한 나의 최애 음료는 공관(公館) 역 근처에 있는 작은 음료점에서 판매하는 '또와이또와이뤼' 라는 음료였다. 패션후르츠에 요구르트와 코코넛젤리를 넣은 음료였는데 정말이지 나의 대만 여름은 이 음료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대만에서 지낸 지 5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방학이라 한국에 들어왔는데 공차라는 대만의 음료브랜드가 엄청 유명해져 있었다. 나는 대만에서 공차를 마셔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유행이라니.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공차를 한국에 창업한 대표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던 대표님은 자신은 커피를 못 마시기에 커피 말고 다른 차와 음료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차를 한국에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처음 공차의 대만 본사에서는 타피오카펄의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 때문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들의 해결방안과 함께 여러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한국에서 공차를 창업할 수 있었다고.


같은 시간 누군가는 대만의 음료문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업의 아이템을 꿈꾸고 이루어냈고, 나는 대만의 음료에 빠져 포동포동 살이 쪄갔다. 그저 신기하기만 했던 대만의 음료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서 이렇게나 핫한 사업 아이템이 될 줄 알았더라면 달달한 음료의 유혹들에 빠져 살을 찌우기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에잇.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던데.


사업가는 못되었지만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서 그리운 대만의 달콤함을 추억해 본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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