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씨 Apr 04. 2024

중국어를 배우는데 왜 대만으로 유학을 간 거야?

ep.3




대만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한 번씩 묻는 질문이 있다.


"중국어를 배우는데 왜 대만으로 유학을 갔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다녔던 2년간의 대학시절 이야기가 필요하다.


정말 중국어에 대한 아무런 기초도 없이 대학교 수업을 들어온 나는 첫 전공수업 교수님을 보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바닥에 식은땀이 났다. 늘씬하고 큰 키에 안경을 쓴 여자 교수님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차도녀 이미지였다. 교수님이 강의실 앞문을 열고 강단으로 걸어오시는 동안 들리는 또각또각 구두굽소리에 집중이 되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大家好”

(따지아하오.)


교수님은 카랑카랑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우리와 함께 중국어회화 수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수업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덧붙인 소개에서 자신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중국으로 유학을 갈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1992년, 중국은 한국과 수교하는 조건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92년 이전에는 대만으로 유학을 갔었다고. 알고 보니 우리 과 교수님들 대부분은 대만에서 석박사 학위를 수료하고 돌아오신 분들이었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중국어가 간체화 되기 이전의 글자인 번체자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하셨다. 수업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번체자와 간체자를 혼용해서 칠판에 쓸 수도 있으니 교재의 글자와 조금 달라도 양해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수님의 소개를 듣고 있자니 묘하게 대만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영어는 워낙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배우는 언어이지만, 중국어와 일면식도 없던 내가 대학교에서 처음 중국어를 접하게 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초등학생이 학교에 와서 수업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매주 받아쓰기를 하고, 교재의 본문을 외우고, 중국어로 이름, 학과, 학년을 표했다.


어쨌든 나는 중국어를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언어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에게 어와 함께 중국문화, 역사, 철학 등의 배경지식들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력적이게 다가왔다. 표음문자인 우리나라말과 다르게 표의문자인 중국어는 뜻과 음이 달라서 말하고 쓰고 듣는 것이 모두 새롭게 느껴졌다. 또한 중국어에 있는 성조는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나에게 아주 찰지게 다가왔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4성을 발음할 때는 약간의 희열감도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중국어와 친해지며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중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원어민처럼 말하고 싶다는 생 사로잡혔다. 더 나아가 중국어로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던 중 방학 동안 우연히 운명 같은 대만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되어 방영되었던 <꽃보다 남자> 대만 편을 보게 된 것이다. <유성화원>이라는 제목의 대만판 꽃보다 남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만배우인 서희원(구준엽과 얼마 전에 결혼한 대만여배우)이 여주인공이었다. 잠도 안 자고 한숨에 첫회부터 끝까지 몰아보기를 끝낸 나는 대만앓이에 빠지고 말았다. 극 중 배경으로 나오는 대학교가 너무 아름다워서 찾아보니 한국의 서울대라 불리는 '대만대학교의 문학원'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의 꿈은 그곳에 입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곳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매일밤 심장이 터질 듯 설레었다. 그때부터 대만유학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중국어가 쏘아 올린 커다란 공이었다. 그 순간 내 인생의 목표는 대만대학교에서 중문학을 전공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2년간 열심히 다니던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대만대학교!


내가 자퇴를 하고 대만으로 유학을 간다는 소식에 교수님들과 주변사람들은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다.


"대만은 세계에서 날씨가 안 좋은 나라 탑 10에 들어갈 정도로 비가 자주 온단다. 잘 생각해 보렴."


"대만은 비가 자주 오니 습도가 높아서 여자들 건강에 좋지 않아. 우리 와이프도 대만에서 유학하던 중 난소에 문제가 생겨서 한국에 들어와 수술을 받았었지."


"한국에서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가면 국가나 단체에서 지원해 주는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왜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거니. 여기서 다 포기하고 가면 2년간 네가 여기서 쌓은 학점과 시간들이 다 사라지는 거야. 한국의 대학교와는 다르게 대만의 학사과정은 엄청 까다로워. 입학은 어떻게 한다 해도 졸업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대만대학교는 대만에서 한국의 서울대와 같은 곳이야. 거기보다 문턱이 낮은 정치대학교라는 곳에만 입학해도 네 인생이 달라질걸. 가능성이 낮은 것에 투자하는 건 시간낭비 아니겠니? 그냥 여기서 학교를 마치고 차라리 일자리를 대만에서 구해보렴. "


"원어민들과 중국어로 이야기 나누고 환경을 경험하고 싶다면  중국으로 가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되지 않겠어?"


이토록 구체적이고 부정적인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이 열정이 과연 한국에서 2년을 더 다니고 나서도 남아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대단하길래'라는 마음의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설령 내가 대만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 해도 도전했던 그 시간들과 열정들은 나의 경험으로 고스란히 남을 테니까.


지금 와서 돌이켜 보아도 대만이어야만 했다. 대만이었기에 나의 20대 후반을 열정으로 불태울 수 있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떠난 대만에서 1년간 언어중심과정을 마치고 그토록 원하던 대만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대만대학교 문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자전거를 타며 캠퍼스를 누빌 수 있게 된 것이다.



DREAMS COME TRUE!!!!!


謝謝。 流星花園!

(고마워요. 꽃보다 남자!)



꽃보다 남자 대만판<유성화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