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해숙 Dec 05. 2021

[단상 고양이]에 관하여

<단상 고양이에 관하여>

1, '단상 고양이' 캐릭터의 시작

; 2011년 2월 무렵에 이야기를 끌고 갈 캐릭터를 구상하고 있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구상하던 중이라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캐릭터는 어느 연령이나 성별에 국한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여러 캐릭터를 그려보기도 하고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평소 좋아하고 같이 살고 있기도 하기에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캐릭터도 고양이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야기를 대변할 캐릭터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힌 뒤에는 캐릭터의 이름이 고민이었다. 사람처럼 이름을 붙이다 보면 특정 성별로 국한될 우려가 있어 적절하지 않았다. 하나의 이야기를 기승전결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연속해서 해야 하는 캐릭터이기에 필요에 따라서 남성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여성의 모습, 아이나 노인의 모습을 할 때도 있어서 한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특정 이름은 적절치 않았다. 2012년 5월 캐릭터 등록을 할 때, 다소 직접적이지만 짧은 이야기나 단상을 대변하고 있는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잘 내포하고 있는 이름 '단상 고양이'로 캐릭터 등록을 했다. 어떤 날엔 일기처럼, 또 어느 날엔 편지처럼, 마음이 쓸쓸한 날에 당신에게 남기는 음성 메시지처럼, 말로 하지 못한 말을 한자씩 꾹꾹 눌러쓴 문자 한 통처럼 그렇게 내 마음에 떠오른 단상들을 이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가장 적절한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2. 작가와 대중 사이, 매개자 ‘단상 고양이’ 

  '단상 고양이'의 시작은 일기와 같았다. 그날그날의 단상들, 혹은 하나의 생각, 하루를 담은 한 문장이 그러한 느낌을 표현한 한 장의 그림과 만나는 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향해 있던 일기는 편지가 되어 너를 향하기도 하고, 나와 너, 우리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더 확장되어 사회나 세계로까지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단상 고양이'는 나를 대변하여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자가 되어 있었다. 어떤 날엔 절절한 그리움의 말을 꺼내고, 어떤 날엔 싱거운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또 부조리한 세상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말랑말랑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너를 잃은 쓸쓸한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우리네 사는 이야기들을 '단상 고양이'를 매개로 전하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사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스마트폰만 켜도 무수한 사람과 연결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도 우리는 때때로 고독하며 덩그러니 고립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관계와 소통이 그 어느 시대보다 수월해졌지만, 언제고 끈 떨어져 부유하는 풍선처럼 되기 십상인 시대이기도 하다. '단상 고양이'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작업하는 이유는, 그러한 세상에, 그러한 사람에게, 그러한 마음에 내미는 관계의 손이며 공감의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단상 고양이 작품에 실린 모든 단상에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단 한 장의 그림이나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단상 고양이와 만나는 당신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치열한 삶 속에서 잊었다 생각한 당신의 이야기가 환기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상 고양이'는 나 아닌 타인들과 세상에 관계와 공감의 제스처로 내미는 손과 같다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민 손을 잡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민 손 이상의 따뜻한 포옹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내민 손을 보지 못하거나 외면할 수도 있겠다. 작품이 대중을 만나는 것 또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단상 고양이'를 만난 사람 중에서 제가 '단상 고양이'를 통해 꺼낸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사실 매우 감사한 일인데, 공감 이상으로 단상 고양이가 꺼낸 이야기로 촉발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분들을 만나면 가슴 벅차고, 따뜻하고, 행복을 느낀다. ‘단상 고양이’의 이야기에 공감을 넘어 본인 삶의 이야기가 환기되는 일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가 사는 삶은 그래도 닮은 구석이 참 많고 교차점도 무수히 많다는 것을 ‘단상 고양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선이라고 가정한다면 무수한 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만남’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교차하지는 않지만 평행한 채로 두 선이 함께 나란히 갈 수도 있겠다. 그것은 그저 다양한 관계 방식의 차이일 거다. 교차하기도, 서로 엉켜 풀기 어려운 엉킨 실타래 같기도, 영원히 만나지지 않지만 늘 곁에서 함께 걸어주기도 하는 무수한 선의 관계처럼 우리 삶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삶의 선들이 만나는 교차점, 때론 풀리지 않는 엉킴, 그리워하지만 만나지지 않는 평행선 같은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우리 분명 다르지만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다보면 우린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이야기를 '단상 고양이'를 통해 하고 싶다.

3. ‘단상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

: 새삼 돌아보니 반려동물처럼 단상 고양이와 함께한 세월도 상당하다. 2021년도 거의 다 저물어가니 얼추 1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한 셈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작업한 수백 장의 작업물 중에서 일부를 책으로 묶어 2016년 초에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고, 꾸준히 개인전과 그룹전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단상 고양이’ 50여점의 작품이 전시장을 찾은 콜렉터들의 선택을 받아 내 곁을 떠나기도 했고, ‘단상 고양이’ 그림이 드라마 협찬 되어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하고, CGV ‘I GREEN IT’캠페인에 ‘단상 고양이’ 캐릭터로 참가하여 CGV에서도 만났고, 책 표지에도 등장하는 등 ‘단상 고양이’로 참 다양한 만남들을 가졌다.

‘단상 고양이’ 캐릭터를 가지고 많은 일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단상 고양이’의 정체성은 ‘떠오르는 단상이나 짧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자’라는 것이다. 전시에서 본 단상 고양이, 아트 상품에서 본 단상 고양이, 어떤 캠페인에서 만난 단상 고양이, 드라마에서 본 단상 고양이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을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단상 고양이가 가장 먼저이고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어디선가 본 고양이 캐릭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공감과 소통의 손을 내미는 매개자’로 단상 고양이가 독자들에게 인식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단상 고양이_겨울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