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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Nov 10. 2023

해외 WWOOF, 외국어가 걱정되세요?

나는 머리글에서, 사람들이  WWOOF나 Workaway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막상 그것을 실행하자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먼저 떠오르기 쉽다. 무엇보다도 외국어 능력이 걱정될 것이고, 낯선 사람들과 이국 문화를 직접 부딪히는 것이 자신 없을 수 있다. 나이 든 분이라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건강이 걱정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모험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마련인 초기의 당혹감 또는 불안일 뿐이다. 착수를 지연시키는 이 방해꾼 때문에, 한때 가슴을 뛰게 했던 계획이 무위로 그치고 말았던 경험을 우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포기를 선택한 것이 가장 후회스러운 결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모험이 불어넣어 주는 신선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발굴해 가면서 이것들을 쓸어내고 결단해야만 한다! 

<호스트 에르베(오른쪽)와 Woofer들(다들 외국에서 왔다.)의 격의 없는 한때>

외국어, 어느 정도의 실력이 필요한가?


외국어 능력이 탁월하다면, WWOOF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 걱정이 덜할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외국어를 잘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좋다. 호스트나 동료 Woofer 들과 소통이 원활할 수 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더 친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가 서툴다면 어쩔 것인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말이 잘 안 나오는 사람은 WWOOF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나는 외국어가 첫 번째 걱정 목록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고 싶다.


첫째, 호스트가 맞이하는 Woofer들은 대개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Woofer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호스트 나라의 말을 잘하지 못한다. 즉 프랑스어를 못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우러 오는 것이다. 우리도 그래서 배우러 가는 것 아닌가? 국내 WWOOF를 가 보라. 외국 젊은이들이 와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한국어를 말하기는커녕 한글을 읽지조차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 호스트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별문제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일하고 간다. 


둘째, 호스트들은 당신이 자기 나라말을 잘하지 못할 것으로 이미 알고 있다. 호스트들은 외국인 Woofer들을 맞이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잘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잘못된 문장으로 말하더라도 능숙하게 잘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호스트들은 Woofer들이 자기 나라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어학 능력을 유독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인 것 같다. 서양의 호스트들은 동양의 언어들이 서양 언어들과 어순도 다르고 어원들이 달라서, 동양 사람들이 서양 언어를 익히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쯤은 익히 잘 알고 있다. 호스트들은 손 글을 써 가면서라도 당신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은 어느 정도의 용기가 준비돼 있는가?


셋째, 자기가 원하는 언어로 소통할 호스트를 잘 선정하면 된다. 프랑스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프랑스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호스트 중에는 영어로 소통하기 원하는 호스트들도 많이 있고, 대개는 2~3개 언어를 구사한다. 호스트의 프로필을 잘 읽어보고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호스트를 선정하면 된다. 단, 여러 외국어를 한다는 호스트들도 모국어 외에는 썩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넷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영어를 잘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이다. 공부를 잘했건 못했건 상당한 수의 단어를 알고 있다. 꺼내어 쓸 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단어만으로도 우리의 생각들을 훌륭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에 대한 울렁증이 문제이고, 혀를 사용한 시간이 짧은 것이 문제이다. 그것을 개선하고자 WWOOF를 하는 것이다. 


다섯째, 못해도 기죽을 필요가 없는 것이 외국어이다. 언어는 끝이 없는 영역이다. 엄밀하게 보면,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말을 구사하는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보고서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국어만큼은 매우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외국어 잘한다 해도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만큼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욕심만큼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에 우리가 외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용기의 문제이고 진정한 자기 긍정의 태도이다.


여섯째, WWOOF를 하는 데에는 그다지 길고 유창한 문장이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논리적으로 토론을 이끌어 갈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 단어, 한 가지 몸짓만으로도 소통하며 함께 일할 수 있다. 특별히 높은 수준의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호스트가 있다면 그 호스트를 선택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임무를 가지고 출장 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서툰 외국어 실력으로도 외국인과 소통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WWOOF는 외국어를 향상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일곱째, 욕심을 줄이면 된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서 그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의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고 공감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제 우리 모두는 매우 훌륭한 도우미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번역기도 있고 동시통역 프로그램도 있다. 메일을 쓰거나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야 할 때, 이것들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외국어보다 더 필요한 것


해외 WWOOF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연대의식과 신용, 진실성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과 함께 하는 데에 필요한 마음자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또 갖추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들의 준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의식을 갖추기는 사실 쉽지 않다. 특히 프랑스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사실 연대의식이란 개념조차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사회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경쟁과 이기심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독성에 순응해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는 천연덕스럽게  '부자 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거리낌 없이 '각자도생'을 말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반대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나와는 별 상관없는 외국인이 아니라,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 함께 돕고 살아가야 할 소중한 이웃이라는 크고 열린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것은 WWOOF의 정신이기도 하다. WWOOF의 호스트들은 대개 이러한 연대의식의 철학이 확고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멀리서 날아온 생면부지의 나에게 딸이 쓰던 방, 아들이 쓰던 방을 내어주고, 주말이면 험한 산길을 안내하며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애쓸 수 있겠는가. 호스트 중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아프리카의 오지에 들어가 직접 봉사활동을 해 온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신분으로, 매일 같이 학교가 끝나면 알프스의 자연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만난 호스트들은, 농담 속에 주고받은 작은 약속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신실함, 거기서 만들어지는 신뢰,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내어 보일 수 있는 진실함의 가치를 우리보다도 훨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젊은 청년들이 이런 만남을 통해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들을 잘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성찰들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그들과 대화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열린 생각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대오에 서서, 오직 극단적인 이기심에 매몰된 채, 아전인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광기의 일면을 멀리서 한 번 바라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여행은 가까이서 잘 볼 수 없던 것들을 멀리서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마법을 선사한다.


<호스트 에르베의 딸 엠마의 방에 붙어 있던 사진,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에르베의 두 자녀 마티유와 엠마>

한편으로는, 내 안에 있는 부족함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려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자만이 자신을 용납할 수 있고 타인의 부족함을 도울 수 있다. 진정성과 신뢰에 대한 나의 성찰이 없다면, 이 여행에서 주목하는 타인과의 진정한 교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관계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들도 경계하기 마련이다. 진솔함!, 그들은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런 가치들에 대해 그만큼 더 민감하다.


이제 외국어 울렁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외연수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감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이유는,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보이려는 우리의 타고난 본성, 즉 ‘허영’이라는 망령 때문이다. 내가 아닌 것으로 나를 내보이고자 하는 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지불하며 살아가는지....... 명품이니 스포츠카니 하는 것들이 다 그런 것들 아닌가?

외국어를 못하더라도 기죽지 않고 자신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나의 있는 그대로를 내보일 수 있는 용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피아가 가르쳐 준 것 


알프스의 산속마을 지에뜨(Giettaz)에서 채소밭 가꾸는 일을 돕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호스트인 카트린느가 싱글벙글하며 내게 말했다. 오늘 독일에서 당신을 도와서 일할 젊은 처녀가 올 거라는 것이었다. 소피아는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21살의 청년이었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데 진로가 잘 보이지 않아서, 장래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머리를 식힐 겸 노동을 하러 왔다고 했다. 육상 선수답게 탄탄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말 수가 별로 없었다. 그녀는 영어를 꽤 능숙하게 했지만 불어는 단 몇 마디 단어만 얘기할 수 있었다. 호스트인 카트린느와 앙드레가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식탁에서 불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미소를 띤 채 항상 듣기만 했는데 나는 그녀가 대화 내용을 알아듣는지 알 수가 없어서 때론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언제나 얼굴이 밝았으며 주어진 일에 비지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일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녀는 오후에는 매일같이 혼자서 산악 달리기를 했고, 주말에는 나와 함께 근처의 높은 산을 올랐다. 말이 없어서 때로는 목석같아 보이기도 했던 그 아이도 떠날 때는 눈물을 보였다. 나는 같이 있던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지에뜨를 떠난 지 한참 후 어느 날 소피아로부터 영어로 메신저가 왔다. “같이 있던 동안 따뜻하게 대해 줘서 감사해요. 제가 불어를 못해서 다들 조금은 불편했겠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덜 행복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다! 진정한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소통할 수 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언어가 서툴더라도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낯선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따뜻하게 포옹할 수 있다.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나는 부족한 외국어 실력 때문에 WWOOF를 실패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용기가 부족해서, 불편함이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뿐이다.

<운동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알프스를 오르던 소피아, La Croisse Baulet를 오르며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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