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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Nov 08. 2023

WWOOF를 통해 얻는 것


WWOOF나 Workaway는 특별한 방식의 여행이다. 우리가 흔히 여행사를 통해 1주일이나 2주일 유명한 곳을 돌아보는 패키지여행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 방식의 여행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WWOOF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여행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여행에는 어떤 자세가 요구되는지 점검해 보고 이것이 자신에게 맞는 여행방식인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 여행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WWOOF를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지부터 얘기하고 싶다.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수년간 유학 생활을 하거나 해외 주재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 그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행동양식과 삶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피상적인 이해는 오해와 편견을 낳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 어렵고, 때로는 아예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사로 간주되기도 한다. WWOOF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좀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조금씩 발견해 가는 존재라고 했다. 우리는 익숙한 환경과 타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데려가 봄으로써, 자신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되고, 한편으로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할 수 있다. 

WWOOF는 단지 노동력과 숙식을 교환하는 계약의 의미를 넘어서는 상호 간의 나눔의 현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들기까지 가족 구성원으로서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그날의 일과를 얘기하고, 날씨를 얘기하고, 이웃집 어른들의 건강상태를 얘기하고, 동네의 현안들을 얘기한다. 자전거를 타고 이웃마을을 다녀오기도 하고, 저녁에 동네 주민들의 반상회에 참여하기도 하며, 주말에는 호스트와 함께 동네 바자회에서 일을 거들고, 함께 등산을 즐기기도 한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회지에 나가 있는 아들의 헤픈 씀씀이를 걱정하고, 노후의 생계를 걱정하며, 해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는 건강을 염려한다. 오늘날의 세태와 정치를 우려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봄으로써 위로를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며, 시각을 교정해 갈 수 있다.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을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대도시에도 5일장처럼 장이 열린다. 여실한 삶의 현장이다. 론 강이 흐르는 리용의 강둑에 장이 열렸다.>

진정한 쉼을 통해 새롭게 충전할 수 있다.

 휴식과 노동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다. 놀랍게도 육체적 노동은 정신적인 휴식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 휴식은 보람과 기쁨이 충만한 휴식이다. 이러한 건강한 쉼 가운데서, 우리가 익숙지 않은 환경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할 때, 자꾸만 타성과 안주함으로 회귀하려는 우리 본성의 이면에  숨어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허무와 권태로부터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만 더 견뎌내라고 스스로를 몰아대면서 소진된 에너지를 쥐어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무한히 존재하는 이 원시적인 에너지 광맥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것은 자기를 경영해 가는 차원 높은 기법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예전과 다른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알프스 산중에는 이런 기도실(Chapel)이 있다. Giettaz 동네 뒷산에 있는 기도실인데 1988년 눈사태 때 파손된 것을 동네 사람들이 다시 세웠다.>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외국어 습득 측면에서, 한 달간의 WWOOF는 일 년 간의 어학연수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단언한다. 더욱이 우리가 책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문화적 소통 역량을 기르는 데에는 이보다 좋은 훈련 방법이 없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대화자가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70%는 소통이 이미 이루어진 셈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언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몸짓, 표정, 태도 등 다양한 표현방법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텍스트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 배운 표현과 단어들은 잘 잊히지 않을 뿐 아니라, 명료하게 인식된다. 이렇게 습득한 단어나 표현은 머릿속에서 번역을 거치는 인식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진정한 외국어 교육 현장인 것이다.

내가 지금 젊은 학생이라면, 휴학을 해서라도 외국어를 습득을 위해 1년 이상 WWOOF를 할 것이다. 그렇게 습득한 외국어와 친구들은 평생 동안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




몸이 건강해진다.

나는 WWOOF를 한 지 3개월 만에 체중이 7kg 줄어들었다. 건강검진을 할 때 미다 으레껏 기록되던 ‘복부비만’을 일거에 해결했다. 체중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나이 들면서 생겨난 이런저런 소소한 증상들도 비만과 함께 사라졌다. 이렇게 규칙적인 육체노동은 이제껏 내 인생에서 없었던 일이었다. 돌아와서 북한산에 올랐다. 가기 전에는 힘겹게 힘겹게 올라갔던 백운봉을 뒷동산 오르듯 쉽사리 올라가게 되는 것을 보고 나 자신도 놀랐다. WWOOF를 하면서 틈틈이 알프스를 등산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데니블레(Dénivelé, 표고차)가 800m에서 1800m로 늘어나 있었다. 덕분에 최근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도전할 수 있었다.

폴 투르니에는 ‘노동 없는 휴식은 휴식 없는 노동만큼이나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균형을 잃어버린 노동이나 휴식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 필연적으로 정신 건강 문제가 야기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주말에 알프스의 산을 올라갈 때마다, 전에 없었던 새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삶이 풍요로워 진다.

‘사람은 젊은 날을 회상하며 나머지 시간을 살아간다’는 영화 대사를 기억한다. 

우호적 분위기에서 만나는 좋은 관계는 그 지역을 더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들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필시 여행이 끝난 후라도 소식을 계속 주고받는 사람들을 여럿 만들게 될 것이다. 시장을 지나치다가 치즈 한 조각을 보더라도,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해본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풍성한 감정과 기억을 가지게 된다. 라끌레뜨 한 조각으로 알프스의 들판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고, 까이에뜨 한 덩어리를 보면서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식탁의 냄새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지식이 아니라, 좋은 감정과 결부된 기억과 인간관계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찍어온 수많은 건물들과 풍경 사진들보다도, 함께 웃어 대며 찍었던 눈감은 스냅사진 한 장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런 순간들의 기억에 기대어 힘겨운 오늘의 삶을 지탱해 가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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