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OOF/Workaway
프랑스로 WWOOF를 떠난 나는 프랑스의 남동부 지역, 그러니까 사부아와 이제르를 중심으로 한 론느 알프지방에서 3개월 동안 프랑스인들의 삶을 체험하며 여행했다. 보통 일주일 또는 이주일을 묵으며 호스트의 가족구성원이 되어 일상의 일을 돕고, 함께 생활하며 함께 여가를 보냈다. 숙식이 저절로 해결되었기에 내게 필요했던 돈은 왕복 비행기표와 현지 이동 시에 소요되는 교통비뿐이었다. 항공권은 그동안 쌓여 있던 마일리지를 이용해서 40만 원 정도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비행기가 14시간 넘게 지연 출발한 까닭에 1백20만 원가량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으니, 현지 교통비를 제하고도 남는 그야말로 ‘땡전 한 푼 들지 않은’ 여행을 한 셈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이 여행에 필요한 숙식비용을 그들의 노동력으로 지불하며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은 젊은이들의 노동력과 농촌의 일손 수요를 훌륭하게 연결시켜 주었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이자 변화이다. 노동할 의향이 있으며 낯선 환경을 기꺼이 마주하려는 사람이라면, 이제 항공권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지 돈 들지 않고 마음껏 여행할 수 있다.
이미 다 알다시피, 산업화된 거의 모든 나라의 농촌들이 심각한 노동력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유럽에서도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린 시골에는 대개 노인들만 남아있다. 그들에게는 주택을 관리하고 채소밭을 가꾸는 것도 힘겨운 실정이다. 여행자는 이들에게 일정시간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들은 여행자에게 비어 있는 방과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서로의 필요를 해결하는 이 “상부상조” 시스템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환상적인 것이다. 여가와 노동력의 결합!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을 들어 <제6차 산업혁명>이란 성급한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수요와 공급의 경제적 궁합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 환상적인 아이디어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요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로 “타인과의 교감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란 것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예전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개인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하더라도, 타인과 서로 교감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히 우리 내면의 한켠에 남아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욕심과 악한 힘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때로는 부정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고귀한 인간 본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봄으로써 이국적 풍경과 색다른 풍속을 즐기는 보통의 여행과는 다르게, 이 방식의 여행은 몸과 마음으로 사람과 부딪히면서 삶을 나누는 여행이다. 여행자는 호스트 가정의 일원이 되어 같이 먹고, 같이 자며, 같이 일하고, 같이 등산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랜 친구처럼 삶을 나누고 고민까지도 나눌 수 있다. 누구나 마주하게 마련인,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고,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먹고사는 문제의 고달픔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다. 이러한 교감을 통해서, 그들이 우리와는 종류가 다른 타인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 지구상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임을 확인함으로써 서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의 다른 시각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이런 여행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멋진 풍광이나 웅장한 건물들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살아가는 꾸밈없는 삶의 현장을 구경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여기저기서 찍어온 그 멋진 사진들보다도 그들과 만들어 낸 인간적 관계를 훨씬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3개월 동안 WWOOF를 경험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이 대열에 참여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네팔,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 젊은이가 다녀갔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국 사람이 다녀간 적은 없었는지 확인했지만, 내가 갔던 집들 중에서는 그런 집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아쉬웠고 이유가 궁금했다. 호텔이나 에어비엔비 숙소의 방명록에는 한국인들이 다녀간 기록이 흔히 목격되는데도 왜 WWOOF나 Workaway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든 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제부터 이 멋진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지,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필자의 체험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타인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채굴할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많이 널려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보니 때마침 Whatsapp에 에르베로부터 사진이 와 있다. ‘그대가 다녀간 흔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리옹 근처의 슈비네 마을에 있는 에르베네 집에서 기거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가 혼자서 목공실에 있던 작업도구를 모두 거실로 가져와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난방이 안 되는 목공실보다는 거실에서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옮겨왔다고 했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나를 배려했다. 언제나 말수가 적은 그였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추울 때는 어떤 일을 부탁하고, 비가 오면 어떤 일을 부탁할 것인지 다 계획되어 있는 것 같았다. 버터와 잼을 바른 바게트 빵과 카페올레 한 대접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면서, 에르베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넓고 긴 오크 널빤지에 표지판을 도안해 줄 것을 부탁했다. 알고 보니 그는 자기 집에 와서 일하고 간 사람들의 나라이름을 목판에 새겨서 자기 집 뒤 언덕에 세워 두고, 볼 때마다 그 이름들과 인연을 추억하고 있었다. 언덕에는 이미 30개가 넘는 나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한국 사람으로는 내가 처음이라서 그 표지판을 만드는 추억을 내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감동받았다. 분명히 그는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나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보내온 사진은 그때 내가 도안해 놓았던 표지판을 내가 떠난 후에 나무판에 새겨서 언덕에 세워 놓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들과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슈비네(Cheviney)의 언덕에도 이제 한국을 가리키는 푯말이 세워졌다.
“COREE DU SUD(대한민국), 9108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