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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Nov 01. 2023

모험은 삶의 에너지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을 떠나는 것을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시골 오지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에도 방학 때 혼자서 주소만을 들고 서울에 있는 누나집을 찾아간 적이 있을 만큼,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설렘과 그 긴장감을 좋아했다. 국내든 해외든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했다. 이제는 해외여행에도 꽤 익숙해졌는지, 단지 구경 가는 여행의 경우라면, 예전처럼 비행기에 오르면서 느꼈던 들뜬 기분을 느끼기조차 어려운 정도가 됐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달랐다.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성격이 다른 여행이기 때문이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낯선 사람의 집을 옮겨가며 외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며 지낸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될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든 나를 과연 그들이 나를 받아줄까, 30년 가까이 묵혀 있던 나의 외국어 실력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그들의 일상에 맞추어 적응할 수 있을까...... 이 여행은 상당한 수준의 용기와 결단을 요구했다. 그런 점에서 이 여행은 분명히 일종의 모험이었다. 한 동안 망설임의 난관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 나는 모험이란 블랙홀에 정신을 잃고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강력하게 지배하는 모험의 마력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고 있었다.


프랑스로 3개월간의 WWOOF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후, 근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새벽 3시가 넘도록 여행 준비에 빠져들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을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식사 시간을 지나친 때도 있었다. 여행 준비 때문에 일상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정도였다. 잠을 청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계속 떠올라 한 시간은 뒤척이다가 잠을 들기가 일쑤였다. 잠에서 깨면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낮에는 체력을 안배하면서까지 인터넷을 뒤지며 몰입했다. 어떤 때에는 언어가 걱정되어, 내가 그들을 만났을 때를 상상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에 필요한 단어나 표현들을 사전에서 찾아보는가 하면, 좋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표현들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700 개가 넘는 호스트의 프로필들을 주의 깊게 읽었고, 100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았다. 프랑스 남동부의 지도는 저절로 머릿속에 상세하게 암기되었고, 수없이 검토했던 교통편들의 시간표와 가격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결국 7군데의 방문지가 확정되어 일정 계획이 완료되었다. 그 와중에 습득한 정보들을 기록하는 데에도 30 페이지가 넘는 메모가 작성되었다.


가끔씩 생각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갑자기 터진 수도관처럼 상상력이 분출되었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지를 휴대하고 다니기도 했다. 기록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에 그동안에 생각들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자동으로 글로써 기록되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놀랐다. 내게 이런 에너지가 있었던가?

이 나이에 이런 집중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여행이란 익숙지 않은 곳에 자기를 데려다 놓음으로써 이제와는 다른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이전에 본 적이 없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렸을 때 하굣길에서 새들의 둥지를 찾아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산속을 헤맸던 때 이후로, 이렇게 즐겁게 뭔가에 몰두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많은 날 동안,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함을 비관하며 천성과 나이를 탓했던가. 나는 지금, 폴 투르니에가 말한 모험의 초기 단계 즉, “폭발적이고도 강력하며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을 꼼짝 못 하게 사로잡는 갑작스러운 상승 곡선”위에 서 있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그의 책 <모험으로 사는 인생>(정동섭 역)에서, 심층적이고 예리한 성찰과 함께, 특별히 인간에게만 있는 이 위대한 충동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이 모험 본능이야말로 인간 행동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추진력이자, 문명과 그 기술적 진보의 원천으로 일컬어지는 자기 보존의 본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것은 감춰져 있거나 억눌러져 있을지 몰라도 절대로 인간의 본성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내야 한다. '권태'란 새로운 모험의 부재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일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홍매화가 피어난 이른 봄이었다. 떠나기 전에, 방문할 호스트들에게 한국의 홍매화를 설명해 주었다. 가벼운 얘깃거리를 만드는 것은 소통을 위한 좋은 방법이었다.>

떠나기도 전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음을 다해 소통한 결과는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벌써 그들과 친구가 돼 있었다.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몽쁠리에에 사는 세브린느는 자기 집에 올 때, 지중해와 접한 아름다운 연못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열차의 왼쪽 창가에 자리를 잡을 것을 세심하게 권유했다. 그녀의 큰 아들은, 4월 7일 금요일 밤에 몽쁠리에 팀의 중요한 럭비 경기가 있는데 같이 갈 수 있는지 내 의향을 물어 왔다. 리용 근처에 사는 에르베는 메일을 주고받다가, 일주일만 머물기로 했던 기간을 2주로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트래킹을 좋아하는 상드린느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내가 힘들어서 그런 줄로 알았는지 나를 위해 전동 자전거를 준비해 놓겠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직업이 요리사인 도미니끄는 프랑스 요리가 어떤 것인지를 내게 보여주겠다고, 또 내가 오면 자기가 직접 김치를 만들어 선보이겠다고 했다. 아르데쉬에 사는 마거리트는 메일도 메신저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직접 내게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자기 집에 올 때 교통비를 절약하는 꿀팁을 알려 줬다. ‘블라블라카’라고 하는 카풀 서비스인데 교통비를 5분의 1로 줄여주는 놀라운 정보였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자기가 직접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차로 두 시간 거리인데도. 알프스에서 빵 가게를 운영하는 까뜨린느는 가끔 이웃 동네에 갈 수 있도록 차를 빌려줄 테니 국제 운전면허증을 꼭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여행을 가서 만날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나의 여행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친하게 지내는 대학 후배는 집에까지 찾아와 정보를 얻어 갔고 다음에 시간이 허락되면 기꺼이 이 여행에 동참하겠노라고 했다. 지인들은 나의 여행 계획을 부러워하며 모두가 응원해 주었다. 돌아오거든 꼭 ‘알프스 한 달 살기’를 안내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아내는 매일 여행 준비의 진척 상황을 물으며 지지해 주었다. 두둑한 금일봉을 쾌척해 준 형제도 있었고, 아이들은 새벽에 공항에까지 배웅해 주기로 했다.


여행은 자신의 삶을 보살피는 훌륭한 방법이자 언제나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여행은 우리의 삶을 보듬어 주는 힘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방향을 찾기 어려웠던 삶의 전환기 때마다 나름대로의 모험을 시도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선택하지 않았을 때, 즉 포기를 선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후회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떠나는 것을 선택한 자에게는 능히 그것을 감당할 새로운 에너지가 제공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짐을 꾸리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폴 투르니에의 책 <노년의 의미, 강주헌 역, 포이에마>와 <인간의 가면과 진실, 주건성 역, 문예출판사>을 빽빽한 배낭에 쑤셔 넣었다. 다시금 찬찬히 읽어볼 참이다. 인생 후반기를 생각하며 떠나는 이 여행은, 투르니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임을 역설했던 명제 즉, ‘생계를 위한 돈벌이에서 문화적 활동으로의 전환’을 직접 모색하고 실험해 보는 삶의 순례 여행이다. 걷고, 땀 흘려 일하면서 생각해 보고 싶고, 다른 나라 사람의 삶도 엿보고 싶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진실은 언제나 모호하다. 그러나 가끔씩 서로 간의 진정한 마음의 교감이 전류처럼 흘러 들어오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삶에서 진실의 단면을 감지하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나는 그들과 이런 교감을 나눌 수 있기를 또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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