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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Nov 20. 2023

길에서 만난 사람들

프랑스에서 90일

테제공동체에서, 하루 중 세 번의 예배 중간중간에는 팀을 짜서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성경을 묵상과 나눔 시간을 가지기도 하며, 공동체 수사들의 강론을 중심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일주일간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셋째 날에 우리 팀은 점심을 먹고 나서 주변 동네들을 산책했다.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다들 친구처럼 다정했다. 때는 봄인지라 따스한 햇볕아래 여기저기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마을들은 한결같이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어서 사람들로 활기찬 테제공동체와는 대조를 이룬다. 가끔씩 들판에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와 까마귀 우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다. 동네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프랑스의 교회들은 낡고 오래된 모습으로 유적처럼 보존될 뿐이다. 언덕 위에 있는 뾰족탑의 교회는 마을의 풍경을 장식하는 설치물로써 기능한다. 성도들의 예배 장소가 아니라 이따금씩 들르는 관광객들의 기도 장소이며, 망자들의 무덤을 지키는 공동묘지가 되었다. 이제는 교회가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육신만을 보살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것 같았다. 어제 오전에 휴대폰 유심을 사러 다녀왔던 이웃 동네에는 역사적인 ‘클뤼니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10세기부터 건축되기 시작한 이 수도원은 한 때는 유럽에서도 가장 규모 있고 영향력 있는 수도원이었고 건축사에 있어서도 길이 남을 만한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나 교황을 4명이나 배출했다는 이 권위 있는 수도원도 지금은 건물마저 대부분 허물어져,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그림으로밖에 볼 수 없고, 다만 일부 건물이 공과대학 학교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바티칸의 큰 딸로 불렸던 그 융성했던 프랑스의 교회들이 이제는 이렇게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나그네는 서글픔과 함께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서 한국 교회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이웃마을로 피크닉. 봄날의 적막한 동네다.>
<옆 동네의 교회 모습. 예배도 성도도 없다.>
<클뤼니 수도원의 일부 모습>
<클뤼니 수도원의 일부 모습>

그러나 위와 같은 프랑스 교회들과는 달리, 테제 공동체에는 젊은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국적도 피부색도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매년 수만 명씩 전 세계로부터 모여든다. 무엇이 이들을 모여들게 하는 것일까? 어떤 연유로 같은 지역에 두 교회가 극명한 대비를 보이며 공존하게 되는가? 테제에 있었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 의문에 답을 얻고 싶었다. 나는 동료들과의 대화와 공동체 생활과 속에서, 그리고 테제공동체가 표방하는 메시지 속에서 나름대로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죄지은 자이든 죄가 없다고 우기는 자이든 간에, 우리 안에서 결코 포기되지 않는 신의 자비에 대한 기대, 설령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여 도피한다 할지라도 죽지 않고 되살아나는 타인과의 진실한 교감에 대한 열망, 나의 아픔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너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위로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숭고한 연대의식, 또한 이런 것들을 서로 나누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기성 교회의 현실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이 벌판에 불러내지 않았을까. 


테제 공동체의 알로이스 수사의 ‘올해의 메시지’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일치, 연대, 우정과 같은 단어들은 한국 교회에서 좀처럼 듣어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의 눈에 보이는 일치를 이루어나가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분명히 그것은 적대적인 세상에 대항하여 더 강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힘이 솟아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신학적 질문에 대해 합의가 선행되어야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이면 때로는 개념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입장을 강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접근도 가능합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 도처의 전쟁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은 악에 직면하여 하느님이 안 계시거나 침묵하시는 것 같다며 기도하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 전쟁의 비극을 처절하게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감과 연대의식이 깨어납니다……’   

<나눔의 시간>


노숙인에게나 주어질만한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평안과 기쁨에 넘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의 외침들을 뒤로하면서, 안락을 추구하는데 고단한 노력을 쏟아붓는 대신에,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 불편을 감수할 용기를 마련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그 길을 가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받으며 더 넓은 연대를 추구한다.


일주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테제 공동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결같이 다정했으며 가족처럼 친근했다. 우리는 함께 먹고, 잠자고, 걷고, 기도했다.


슬로베니아에서 온 여의사 안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 세상에는 세상이 주지 않는 다른 만족과 평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벌써 열한 번째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의료봉사를 담당한다. 식사 때마다 내 옆에 와서 식사를 하며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동양 의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서양 의학에 익숙했던 그녀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민간요법들을 접했을 때, 많이 혼란스럽기도 했고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사제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던 신앙심이 깊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체코 출신의 독일인 엘레나는 나를 볼 때마다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서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내 이름을 기억하도록 해 주었다. 걸음걸이는 항상 힘찼고 늘 상냥했던 그녀는 마치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죽마고우인 것처럼 쉼 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늘 활기찬 그녀였지만, 공산치하에서 지하 교회를 통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유지하던 시절을 얘기할 때에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홍콩에서 온 브리짓뜨는 언제나 열성적이고 활기찼다. 어느새 식사 배식 팀에 끼어 배식을 하고 있는가 하면 식사를 마치고 나면 벌써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침 예배 때에 내가 젤 먼저 왔겠거니 하고 예배실에 들어가 보면, 그녀가 제일 앞에 앉아 있다. 마콩에서 테제로 오는 버스에 올라 신용카드로 버스 요금을 지불하려고 보니, 현금으로만 지불할 수 있는 버스였다. 동전을 찾느라 당황하며 지갑을 뒤지는 동안, 뒤에서 누군가가 운전사에게 내 버스비를 건넸다. 테제에 4번째 온다는 그녀는, 내게 묻지 않고도 내가 테제에 오는 사람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항상 기쁨에 넘쳐 있었고 거침없고 자유로웠다. 나는 분명히 그녀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독일에서 온 73세의 만프리드는 자상한 삼촌 같은 분이었는데 정말 멋지고 큰 캠핑카를 끌고 왔다. 그는 왕년에 자동차 경주 선수였다. 인생을 자동차와 함께했던 그는, 나를 불러서 1시간 동안이나 캠핑카의 구석구석을 설명해 주었다. 그 후로도 나는 두 번이나 불려 가서 그가 젊었을 때 그가 경기하는 역사적인(?) 비디오 장면들을 함께 보아야 했다. 그는 자주 내 곁에 와서 말없이 내 손을 잡아 주었고, 말할 때는 내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이번주의 테제 방문객 중에는 유독 독일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유일한 한국 사람인 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는 눈치였다. 프로그램마다 내가 참석했는지를 확인하고, 손을 흔들어 맞아주었다.


스위스에서 온 여목사 알렌느와는 반나절을 함께 걸으며 교회와 신앙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여의도에 있는 한국의 모 교회를 방문한 소감을 생생하게 설명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한국말은 “목사님 목사님”이라는 말이었다. 교회에서 설거지 봉사를 하려고 해도 다들 달려들어서 “목사님 목사님” 하며 안된다고 손을 내저으며 밖으로 내몰더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목사들은 신도들과 하나님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담임목사를 경호하는 것을 보고도 충격을 받았고 교회 안에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었다고 했다. 교회를 수평적 공동체로 생각하는 그녀에게, 한국교회의 그런 모습들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나는, 한국에서는 교회가 자식에게 세습되기도 하고 거래되기도 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프랑스인 올리비에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내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해 주었고, 내가 보끌뤼즈(Vaucluse)를 둘러보고 싶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거기에 사는 자기 이모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자기가 미리 전화해 놓을 테니 가거든 꼭 전화해서 거기서 묵으라고. 


나와 함께 방을 썼던 두 명의 독일 친구는 배려와 이해심이 많았다. 춥다고 말하면 옷을 가져다주고, 수건을 안 챙겨 온 내게 자기 수건을 꺼내주고, 밤에는 자기 담요를 건네고, 또 어디선가 여분의 담요를 구해다 주었다……. 이들은 워낙 프로그램에 충실했기에 특별히 내가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방을 나가면 그 시간은 정확히 프로그램시작 15분 전인 것이다. 예배시간, 식사시간 잠자는 시간이 정확하고 한결같았다. 우리는 긴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어제는 한국에서 온 젊은 부부를 만났다. 시간이 없어서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반가웠고 대견했다. 두 달간 성 야고보의 순례길(까미노)을 가기 전에 테제에 들렀다고 했다. 나는 일상을 접고 모험을 감행하며 뭔가를 찾으려 애쓰는 이런 젊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스치듯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한국에서 가져온 인스턴트 미역국 봉지를 내게 건네며 눈물을 보였던 그 젊은 부부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 4월에 접어들었지만 부르고뉴의 벌판은 아직 쌀쌀하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오후에는 리용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이제 본격적인 Workaway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길 위에 선 여행자의 감정에 쓸쓸함이 안개처럼 깔린다.


<이른 봄인데도 테제공동체의 잔디밭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공동체 건물들 뒷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 침묵과 정숙을 요한다.>
<테제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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