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푸른 눈의 성공회 신부 아처 토레이(Archer Torrey, 대천덕 신부)는 강원도 태백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천막을 친다. 이른바 예수원의 시작이다. 몇 해 전, 내가 이 위대한 사역의 현장을 찾았을 때, 마침 비가 왔던 까닭에 꼬박 3일 동안을 그가 사용했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나는 거기서, 인간들에게는 기적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이 불꽃같은 영혼들의 위대한 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 황잡한 세상에서도 공통체적 삶을 꿈꾸며 연대를 외치는 것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삶과 신앙으로써 보여준 거인이었다.
<태백의 예수원 전경>
<대천덕 신부님이 쓰시던 거실겸 서재>
‘Le Bourg, 71250 Taizé, France’, 테제 공동체의 주소다. 프랑스 동부의 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한 마을이다. 사실 나는 테제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몇몇 사람들로부터 세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공동체가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간단한 설명이나 방문기 외에는 나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단서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예수원을 다녀온 이후로, 나는 언젠가 테제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나는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를 테제로 정했다. 무엇보다도 3개월간의 WWOOF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면서 Warming up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궁금했던 것들, 즉 ‘어떤 형식의 공동체적 삶이 이 땅 위에서 가능한 것인가? 그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삶과 신앙은 어떠한 것인가?’와 같은 의문들을 가지고 직접 그 실상을 엿보고 싶었다.
테제에 가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을 문의하던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부딪혔다. 30세 이상은 등록할 수 있는 날짜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023년의 경우는 3월 26일부터 10월 22일까지였다. 3월 초에 떠나고자 했으나 나는 하는 수 없이 여행 시작 날짜를 이 기간에 맞추어 미루어야 했다. 게다가 일주일 단위로 운영되므로 일주일을 초과하여 머무를 수 없고 두 주에 걸쳐서 머무를 수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일요일에 입소하거나 일요일에 퇴소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요일에 입소하여 다음 일요일에 퇴소하거나, 일요일에 입소하여 수요일에 퇴소, 목요일에 입소하여 일요일에 퇴소하는 식이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다행히도 나는 올해의 첫 입소 시작일인 3월 26일부터 일주일간의 방문이 허락되었다.
테제로 가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파리의 드골 공항에 내린 다음, 리용역(Gare de Lion)에서 가서 고속열차(TGV)를 타고 마콩로쉐테제베(Mâcon-Loché TGV) 역까지 400여 km를 달려간 다음, 다시 테제공동체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30여 km를 가야 한다. 문제는 서울발 비행기가 대개 오후 4시경에 드골 공항에 도착하므로 그날 중으로 테제에 도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마콩로쉐 테제베(Mâcon-Loché TGV) 역에서 테제공동체까지 가는 버스가 일요일에는 운행이 뜸하고, 저녁 늦은 시간에는 아예 배차되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운행이 날짜별, 요일별로 다 다르므로 세심하게 확인해야 한다.) 택시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그 시간에, 그 황량한 곳에서 택시를 부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택시를 탄다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요금이 나올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하루 전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에, 다음날 오전에 마콩으로 내려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여행이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하게 마련이다. 그날따라 파업으로 인해 에어 프랑스 비행기가 14시간이나 늦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미 예약한 호텔은 취소가 불가능했고 나는 다음날 새벽에 드골 공항에 내리게 되었다. 마콩으로 가는 열차 시간이 다급했지만, 나는 에어프랑스 사무실을 먼저 찾아갔다. 다행히 나의 요구대로 친절하게 지연 보상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나는 나중에 안내대로 절차를 밟아 1백만 원이 넘는 항공기 지연보상금을 받아냈다.) 마침내 계획한 일정대로 점심시간 즈음에 테제 공동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테제를 찾아가는 날은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이른 봄날이었다. 방한 의류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열차는 진녹색의 밀밭을 무심하게 가로질러 달렸다. 저 밀들이 누렇게 익을 즈음에 다시 이 길을 달려 돌아갈 것이리라. 시속 280km의 속도로 내닫는 열차는 두 시간이 채 안되어 마콩로쉐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역사를 나오는 순간 나는 당황했다. 역 주변에 어느 정도 상권이 형성돼 있을 것으로 짐작했건만 사람도 건물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공항에서 항공기 지연 보상 문제를 알아보느라 휴대폰 유심을 살 시간이 없었기에 마콩역에서 살 심산이었다. 마콩역이 이 정도라면 시골마을 테제에서 유심을 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유심을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호스트들과 아직 주고받아야 할 메일이 있었고, 통신이 단절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두렵기까지 했다. 공동체내에서는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어렵다. 결국 해결해야 할 숙제를 안고 테제로 가게 된 것이다.
<파리에서 마콩으로 가는 TGV에서>
마콩에서 테제공동체까지 가는 L701버스는 한산했다. 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시골 마을들이 조금은 황량해 보이는 구릉과 벌판을 배경으로 평화롭게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 전 세계에서 일 년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얘기가 사실로 믿기지 않았다. 버스에서 만난 브리지뜨를 따라 정문을 들어서면서는 난감한 기분마저 들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널따랗게 이어진 마당은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산했고 입소에 대한 안내조차 없었다.
테제는 사방으로 펼쳐진 벌판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빈 벤치에 앉아 등록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꽃향기와 함께 바람에 실려오는 말똥 냄새가 내가 지금 깡시골에 와 있음을 이따금씩 환기시켜 주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프랑스 내륙을 지나며 대지의 습기를 머금어서 그런지 테제의 공기는 부드럽고 상쾌했다. 하지만 여전히 냉기를 느끼게 하는 초봄의 쌀쌀한 날씨여서, 가지고 온 등산복을 꺼내 패딩 안에 덧입었다.
<마콩에서 테제로 가는 길>
<테제공동체의 정문. 일요일 오후라서 한산했다.>
<테제 공동체의 건물들>
<테제 마을 전경>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입소 절차가 시작되었다. 신원을 확인하고, 일주일간 묵을 방과 봉사할 일을 배정한 후에 체류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데, 일일이 개별 면담을 통해 진행하느라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사람들은 소풍을 나온 듯 쾌활했고, 눈빛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오랫만에 만난 가족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느라 사끌벅적 했다. 바쁠것 없고 마냥 즐거운, 그야말로 프랑스식이다. 체류비용은 공동체에서 최소한은 금액을 제시하고 각자 사정에 따라서 본인이 결정하도록 한다. 대부분 제시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는 것으로 보였다. 공동체에서 제시하는 일주일간의 체류비용은 120유로였다. 숙소는 대개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들로 늘어서 있었고, 내가 있을 건물은 대 예배실로부터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내 방은 네 개의 2층 철제 침대가 놓여있는 8인 1실의 작은 공간이었다. 공동화장실도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온수조차 여의치 않은 열악한 주거 환경이다. 나를 뒤이어 독일 친구 두 사람이 배낭을 메고 방에 들어온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소개했다. 다들 선하고 우호적인 인상이었다. 일주일 간 한방에서 동거할 친구들이다.
<테제공동체의 숙소 건물>
<숙소 내부>
저녁 6시. 기다리던 식사시간이다. 잔디밭 위에 세워진 천막식당은 오후 들어 불기 시작한 바람 때문에 세차게 흔들리며 시끄럽게 소음을 냈다. 배식대와 넓은 벤치들, 몇 개의 탁자가 놓여있다. 어디서들 모여들었는지 천막 식당은 금새 사람들로 가득 찼고, 곧 간단한 기도 후에 배식이 시작되었다. 식사라고 해봐야 빵 한 덩이에 콩요리 한 접시, 사과 하나, 따뜻한 물 한 컵이 전부다. 결코 풍족하지 않은 메뉴이지만 한결같이 밝은 얼굴들로 옆 사람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모두가 격의 없고 친절하며 서로에게 자리를 권한다. 어디선가 누가 내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돌아보니, 등록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던 독일의 헬레나와 슬로베니아에서 온 안나가 같이 먹자고 손짓한다. 모인 사람의 절반 정도는 독일 사람들이었고 한국 사람은 나 혼자다. 나는 배가 고파서 빵을 두개나 더 가져다 먹었다. 배식을 하고 있던 브리지뜨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식사 끝나고 돌아갈 때는 방에 가서 먹으라며 빵을 하나 더 건넸다. 여기서는 배식이며 설저지며 청소를 각자 맡아서 참가자들이 직접 한다. 나는 화장실 청소를 맡았다.
7시. 예배시간이다. 숙소가 멀리 있어서, 방안에 있던 나는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룸메이트인 독일 친구들이 황급하게 나가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테제의 예배는 하루에 세 번 드린다. 참석자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진행자도 없고 설교도 없다. 의자도 없이 바닥에 앉는다. 한 번의 짧은 낭독과 여러 곡의 찬송이 이어지는 것으로 끝이다. 자유로움 가운데 엄숙함이 있고, 진지함 가운데 기쁨이 충만한 예배였다. 감미로운 찬송을 함께 부를 때 보았던 그 평안한 표정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의 난리통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안심하는 표정이랄까. 찬송은 여러 나라말로 불린다. 독일어 가사로 된 찬송도 있고, 불어로 된 찬송도 있고, 러시아어로 된 찬송도 있다. 아는 곡이 나오면 따라 부르면 된다. 테제의 찬송들은 대개 간단한 문장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따라 부르기 쉽다. 예배가 끝나면 개별적으로 사제들과 면담을 가질 수 있다. 저녁 예배로써 하루의 프로그램이 종료된다. 각자는 방에 돌아와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긴 여로에서 피곤했던지, 나는 예배가 끝나자마자 방에 돌아와 짐을 대충 정돈한 다음 겉옷을 입은 채로 잠을 청했다. 더욱 쌀쌀해진 밤 기온이 걱정되었나보다. 옆 침대의 독일 친구가 침낭을 꺼내더니, 자기 담요를 내게 덮어주고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