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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 Dec 04. 2023

나 혼자도 잘 산다

프랑스에서 90일

여러 호스트를 방문하는 여행이다 보니, 일정을 빈틈없이 연결하려다 보면 어려움에 봉착할 수가 있다. 프롱티냥의 세브린느 집과 이제르에 있는 알린느 집 방문 기간 사이에 일주일의 공백이 그랬다. 이미 정해진 두 일정 사이에, 또 다른 적당한 호스트를 찾아 꿰맞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날을 소모한 끝에 결국 아르데쉬의 오브나(Aubenas)에 있는 호스트를 찾아냈다. 오브나는 리용과 몽펠리에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교통상 그다지 접근성이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멀리 돌아가는 길은 아니었고, 더구나 일주일의 짧은 기간을 받아주는 호스트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스트 프로필에 나와 있는 정보는 간단했다. 그녀의 이름은 상드린느(Sandrine)이며, 나이는 나와 비슷하고, 활달한 성격에 등산과 자전거 하이킹을 좋아한다는 것, 정원관리와 잡일을 도와줄 사람을 원한다는 것,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브나의 풍경. 프랑스 중부의 산세가 시작되는 곳이다.>

오브나는 리용과 아비뇽의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며 아르데쉬 주에 속한다.

프롱티냥에서 오브나로 가는 교통편은 복잡했다. 거리는 200여 킬로미터에 불과했지만 열차 노선이 여의치 않았고 버스편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일러준 대로 블라블라카(blablacar) 서비스를 이용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카풀 서비스이다. 그 방면으로 가는 빈 차가 여행자를 태워주고 저렴한 비용을 받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블라블라카를 처음 이용해 보는 것이다. 도미니끄가 약속된 장소까지 바래다주었다. 또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자의 불안 때문이었는지, 차 안에서 도미니끄에게 물어보았다.

“별문제 없겠지?”

“문제라니. 무슨 문제???”

도미니끄는 내 질문의 뜻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블라블라카 서비스는 안전한 거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그는 아무 문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블라블라카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서비스의 안전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 서비스를 얘기해 본 즉, 대다수의 친구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독일에서 온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남의 차를 타고, 모르는 다른 승객들과 여행을 한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프랑스 사람 중에 이 서비스의 안전에 대해 의심을 가진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동 시에 맨 먼저 고려해야 할 교통수단으로 블라블라카를 추천할 정도였다. 사회적 차이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그 사회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를 말해주는 단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차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만한 할 문제이므로 다른 글에서 별도로 나누고자 한다.  

나는 노파심에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호스트가 혼자 사는 여자인데, 별문제는 없을까?”

“문제라니. 무슨 문제???” 도미니끄의 대답은 또 같은 문장이었다. 좁은 차 안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대면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질문의 요지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는 나의 질문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혼자 사는 여자가, 그것도 생면부지의 낯선 외국 남자를 맞아서 집에서 함께 숙식하며 집안일을 하겠다는 것은, 한국에서라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도미니끄는 왜 거기에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프랑스 문화, 프랑스 여성들에 대한 나름대로 이해가 있었던 터라, 이런 것은 아무런 염려할 문제도 없을뿐더러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미니끄를 통해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런 것을 남녀관계의 시각에서 수상한 눈초리로 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일 이유가 없었다. 설령 무슨일이 있다 치더라도 그게 문제 될 건 또 뭔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두 사람의 다른 승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곧이어 20대의 젊은 아가씨가 차를 몰고 와서 우리를 태웠다. 그녀는 오브나에 있는 삼촌댁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삼촌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매주 이틀씩 삼촌댁의 집안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고 했다. 오브나를 오가는 동안 혼자 빈 차로 다니지 않고 이렇게 승객을 태워서 유류비를 보태고 있는 중이었다. 차 안에서는 가는 동안 내내 이런저런 얘기가 이어졌는데, 뒷자리의 내 옆에 앉은 아랍 여성은 그다지 말이 없었다. 처음 타보는 블라블라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덕분에 나는 교통비를 3분의 1로 줄였고, 대중교통으로 4시간 반 걸리는 시간을 2시간 20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에서는 이렇게 효율적인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신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과 시간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정신적 긴장감과 피로감은 또 얼마나 큰가.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속지 않기 위해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더욱 조심해야 하고, 더 강력한 자물쇠를 설치해야 한다. 신뢰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에 노력하는 것보다는 담을 높이 쌓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산다. 더 신뢰할수록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르는 것은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없는 희망일까?


상드린느는 픽업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보통의 프랑스 여자들보다는 훤칠한 키에 미모를 갖춘 활달한 여성이었다. 차에 올라 간단히 인사를 나누자마자, 친구에게 말하듯 ‘집에 가는 길에 원예 가게에 들러서 흙과 나무들을 좀 사가지고 가자’며 쇼핑몰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녀는 화분을 채울 흙과 나무들을 트럭에 가득 실었다. 저게 다 내가 해야 할 일이렸다? 거침없고 씩씩한 프랑스 여자로군!


그녀의 집은 정원이 꽤 넓고 수영장이 갖춰진 단독 주택이었다. 내 방은2층에 있었는데 딸이 쓰던 방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화분 흙 갈기, 정원의 잡초 제거하기, 구덩이 파서 나무 심기, 현관 데크에 페인트칠을 하기, 수영장 청소하고 물 갈아주기 등 그녀가 미뤄 놓은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그녀는 근사한 식사를 차려주었고 동네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녀의 직업은 부동산중개업이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귀에 걸고 산다. 오브나에서 태어나고 오브나에서 자랐다. 남편과 이혼한 지는 오래되었다. 딸이 하나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다. 혼자 사는 만큼 모든 일을 혼자서 해 나가야 한다. 창고에는 그녀가 다루는 잡다한 공구들과 농기구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돼 있다. 그녀는 그것들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제초기가 고장 나면 공구들을 가져와서 직접 고쳤다. 전기톱을 들고 장작으로 쓸 나무를 자르고, 작은 포클레인을 빌려와서 언덕의 흙을 퍼다가 정원에 화단을 만든다. 내게 일을 지시할 때는 마치 야전 사령관처럼 시범을 보였다. 전형적인 프랑스의 맹렬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골 출신답지 않게 세련된 매너와 모를 가졌으며,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여린 마음을 가끔 내비치기도 했다. 그녀는 매일 아침 거실에서 요가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산행을 한다. 예전에 어디선가 동물을 죽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에 담배를 사러 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것을 사다주었다. 담뱃값은 어김없이 각자의 몫이다.

<상드린느의 집. 몇 년 전에 구입하여 그녀가 새로 개조했다.>
<어느 날의 점심 식사. 날씨가 좋으면 실외 식탁을 이용한다.>
<우퍼가 하는 일, 페인트와 니스 칠하기(전)>
<페인트와 니스 칠하기(후)>

떠나기 전날, 그녀는 나를 데리고 근처 관광에 나섰다. 우리는 라봄므(La beaume)의 강기슭을 10여 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다. 라봄므는 아르데쉬 강의 지류인 작은 강줄기의 이름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주상절리 사이로 깨끗한 강물이 흐르는 작은 협곡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내가 점심을 샀다. 오후에는 아르데쉬의 유명한 협곡, 뽕 다르크 Pont d’Arc를 둘러보았다. 프랑스는 도처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축복받은 나라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된다.

< 라봄므 강 풍경 >
<한적한 라봄므 강을 내려다보며 상드린느와 함께 한 점심 식사>
<Pont d'Arc의  협곡>
<Pont d'Arc에서 상드린느>

그녀와 함께 한 일주일 동안 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Woofer 임을 잊지 않고 열심히 그녀를 도왔으며, 그녀는 내가 여행자임을 잊지 않고 나의 여행을 안내하고 도왔다. 한국에 돌아온 지 한참 후에, 캐나다로부터 사진과 함께 안부 메시지가 왔다. 캐나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으며, 프랑스에 오거든 언제든지 다시 들르라는 내용이었다. 혼자서도 기죽지 않고 자유롭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프랑스 여자! 상드린느의 건투를 빈다.   


<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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