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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와 나 2 -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

by Someday

마크 로스코와 나 2


한강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결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thunderbolt-1905603_1280.png?type=w966 일러스트 출처: 픽사 베이 무료 이미지 2장 편집


지난 10월에 올렸던 한강의 시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통과한 망자의 넋 사이로,

한강의 작품을 뚫고 나선, 동호와 정대 두 소년의 영혼이 얼비쳤다.

1980년 5월의 기억이, 예감이, 가야 할 방향도, 내가 나라는 것까지 그즈음에 딱 멎었지만,

영혼의 피 냄새는 물결처럼 우리의 실핏줄 속으로 스며오고, 번져온다.

어둠과 빛의 틈으로 스며오르고 번져 오른다.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벼락 치는 틈을 통과한 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실핏줄 속엔 망자의 혼이 담겨 있다.

이 시를 읽는 우리에게도 마크 로스코와 한강처럼, 그들의 영혼이 스며들고 번져든다.


*이 시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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