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유 Mar 02. 2023

어린 기억에도 이렇게 사무치는데.

엄마와 이모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슷해졌다. 얼굴형도 피부색도 살집도 달랐던 이모는 열 살 터울 우리 엄마를 그대로 닮아갔다.


이모는 서울에 처음 올라와 결혼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정 많았던 엄마는 없는 살림이지만, 눈 감으면 코 베가는 무서운 서울에 어린 여동생을 혼자 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이모가 결혼하고 이듬해 두 분은 같은 시기에 아들을 낳았다.

엄마는 딸 넷을 낳고 얻은 막내아들 권, 이모에게는 첫아들 현이었다. 두 아이는 나이도 키도 얼굴도 무척이나 닮았는데 형제처럼 늘 붙어 다녀 보는 사람마다 쌍둥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이모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조카들을 함께 건사했다. 처녀 적 엄마에 대한 고마움인지 같이 산 정인지 조카들을 살뜰히 챙겼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80년대 한강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서차 놀러 와 밥도 해 먹고 수영도 하고 밤에 잠도 잤다. 방학이고 해서 동네 언니들과 한강에 가서 신나게 물놀이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지-지직 스피커 사이로 사람 찾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ㅇㅇ동에서 온 9살 현을 찾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흘려버렸을 목소리지만

‘어! 이모네 현이하고 똑같네.’ 신기해했더랬다.


걸어서 집까지 30분. 젖은 옷을 벗으려는데 집 전화가 울렸다. 다급한 목소리로 어른을 찾는데 아무도 없었다. 현이 응급실에 있으니 급히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한강 안내 방송에서 찾던 현이 사촌 현이었던가? 명확하지 않은 답에 눈물부터 흘렀다. 엄마 가게로 달렸다. 그리고 엄마와 전화기가 없는 이모네로 뛰었다.


물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현은 이모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9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이모의 삶은 눈물겹도록 처절했다. 돌봐야 할 현의 동생이 있었기에 죽지 못해 버티는 것 같았다.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이모가 걱정돼 엄마와 찾아가 보면 눈물마저 말라버린 무표정한 얼굴로 무의미한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모마저 잃게 될까 엄마의 한숨이 늘어갔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이모는 임신을 하고 운명처럼 또다시 아들을 낳았다. 자식 잃은 슬픔을 무엇으로 잊겠는가마는 살아갈 힘을 얻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현이 다시 온 거라 말하며 웃는 이모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남동생 권이의 결혼식 날,

엄마보다 이모가 더 많이 울었다.  


권이와 쌍둥이처럼 닮았던 현.

엄마와 쌍둥이처럼 닮아가는 이모가 운다.

엄마 같은 이모가 운다.


좋은 날이 많아도 이모는 평생을 그렇게

문득문득 가슴으로 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허 샘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