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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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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유 Nov 11. 2023

2. 생신 그리고 입원

아빠의 소원.

6월 들어 아빠는 마른기침을 자주 했다. 일주일 동안 입원해 목의 이물감과 가슴 통증, 소화불량관해 다양한 검사를 했지만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퇴원 후에도 숨이 차고 속이 좋지 않아 잘 드시지 못했고  점점 약해졌다.


7월 13일은 아빠의 여든두 번째 생신이었다.

3월 친정 가족 여행으로 진해 군항제를 다녀오면서 아빠 생신에는 부산 여행 가자고 얘기했던 터라  다녀오자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빠는

"여행보다도 꼭 하고 싶은 게 있다. 아들이 하는 가게에서 동네 어른들한테 식사대접 한번 하고 싶구나.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은 지금 동네에서 50년을 넘게 사셨다.

결혼하고 서울에 올라와 오랜 기간 힘들게 장사하며 나름 자수성가하신 분이다. 구멍가게 시절부터 아빠는 돈이 없는 아이에겐 을 주고 폐지 줍는 노인에겐 팔고 남은 부식 거리를 나눠주고 미화원 아저씨에겐 막걸리를 대접했다.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사람들의 외상값이 쌓여갔다. 떼인 돈도 많았다. 아빠는 베푸는 걸 좋아했고 정이 많았다. 아빠가 가게에 있는 시간에는 늘 사람이 끓었다. 마트를 그만둔 지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아빠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45인승 버스를 대절해 어른들을 모시기로 했지만, 생신날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에 혹여나 참석하는 분들이 적으면 어쩌나 그래서 아빠가 서운해하면 어쩌나 걱정됐다.


먼저 도착한 동생네 가게에서 가족들과 버스를 기다렸다. 걱정과 달리 빈 좌석 하나 없이 꽉꽉 채운 어르신들과 환하게 웃으며 내리는 엄마 아빠를 보니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버스 앞에서 우산을 씌어 드리며  내리실 때까지 꾸벅꾸벅 인사했다.


맛있는 음식자녀들이 준비한 유쾌한 이벤트로 

연신 분위기는 최고였다. 아프셔서 그간 식사도 잘 못하셨던 아빠도 그날만큼은 맛있게 많이 드셨다. 오 남매 크는 모습을 세월로 지켜보신 동네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 "고맙다 장하다 효자다."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빠가 원하시긴 했지만, 이제라도 해드릴 수 있음에 벅찬 감동 느꼈다. 자리해 주신 어른들께도 깊이 감사드렸다. 부모님과 어르신들은 버스를 타고 동네 경로당으로 가서 한바탕 2차 뒤풀이를 즐겼다고 했다. 그렇게 좋은 날만 있길 바랐다.


이틀 뒤 아빠는 심한 복통으로 입원했다.

결국 그날의 생신 식사대접은 아빠의 마지막 소원이자 50년 지기 어른들과의  마지막 인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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