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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희 Aug 09. 2023

네 번째 직업은 임산부 테라피스트다.

내가 임산부테라피에 올인하는 이유 4


그 일은 산후조리원에서 임산부를 마사지하는 일이었다. 버텨내겠다 다짐하였지만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동안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법인회사 대표까지 했던 내가 사람 몸을 만지는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내 신세가 너무 서글펐다.


하지만, 며칠 후 나의 마음에서는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거친 공사현장에서 남자들과 일했던 내가 완전히 다른 개체인 임산부들과 하루 종일 집안 이야기, 남편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이 새로운 세상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녀들이 한 명 한 명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만만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아 과제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냥 열심히 마사지해서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하체부종, 손가락 부종, 허리 통증, 골반 통증, 환도 통증, 꼬리뼈 통증, 서혜부 통증, 치골 통증, 무릎 발목 통증, 관절 시림, 오한, 가려움증, 피부발진, 불면, 끝없는체중 증가, 우울감…
고통을 호소하는 산모들의 증상은 끝이 없었다.
마사지 실력을 연마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풀리지 않는 산모들의 호소에 정말 멘붕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증상의 공통된 답은 ‘애 낳으면 낫는다.’, ‘시간이 지나야 낫는다.’였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녀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산모들의 모습이 내 눈과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퇴근 후와 주말에는 관련 분야의 강의를 쫓아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선배나 동료들에게서 내가 궁금했던 문제의 답을 해소할 수 있었다면 아마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들을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더 많은 갈증을 느꼈던 거 같다.
나의 모든 휴식시간은 강의 듣고 인터넷을 뒤지고 논문을 찾아가며 공부하는데 모두 다 소진하였다. 조경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올인하였다.
망하긴 했지만 대표를 해서였을까? 각기 증상들을 분류하고 가설을 세우고 공부했던 여러 방법들을 대입하기 시작하였다. 산모들의 작은 생활습관까지 체크하였다. 그리고 내가 세운 가설이 맞는지 틀린 지를 계속 실험해 나갔다. 이런 걸 보면, 학원 강사 했을 때 시험을 분석하며 패턴을 찾았던 거와 같이 내가 어떤 것에 패턴을 찾고 데이터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거 같다.

이렇게 몇 년을 계속했다.

지금 와서 생각인데 지겹지도 않았나 싶다. 그런데, 단 하루도 지겨울 틈이 없었다. 항상 응급상황처럼 산모들의 하루하루가 긴박하고 소중했다. 아직도 맘 카페에 산모들의 힘든 상태에 대한 호소 글만 올라와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임산부의 난제를 수수께끼 풀 듯 하나하나 파헤쳐 나갔다. 내가 설계한 가설과 솔루션이 맞아떨어지며 산모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는 ‘아싸’를 외친다. 이때가 도파민이 대량 방출되는 시점이다. 너무 좋으면 오히려 입에서 욕이 나온다는 걸 아는가? 진짜 미쳐 버릴 정도의 쾌감이다.
세상 진리는 단순하다고 했다. 내가 아니어도 어떤 테라피스트라 할지라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관리법을 단순화하였다. 임신 중부터 산후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 속의 셀프 팁을 알린다. 또 신랑이 도와주는 마사지 테크닉을 전수하며 임산부 부부들을 코칭해 나간다. 이렇게 산모들의 임신 중 삶이 편해지다 보니 태교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더불어 분만 과정이 편안해지고 출산 후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진다. 이것을 보면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산모들을 이렇듯 예술품 하나 만들 듯 애지중지 관리해 나간다. 내가 설정한 안전지대로 들어오는 것을 봐야 그제야 마음이 안심된다. 또 신이 나서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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