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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희 Jun 15. 2024

색소침착으로 뒤덮인 산모

산후테라피 1



저는 샤워하고 거울을 안 봐요


새로 입실한 산모를 만나는 것은 항상 설레는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테라피를 하면서 설레기까지 하겠냐고 할 수 있지만 산모마다 특이사항과 몸의 상태가 모두 다르기에 같은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9년 전 그날도 여지없이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케이스의 산모를 만났다. 

테라피를 하기 위해 산모에게 탈의를 안내하고, 잠시 뒤 룸으로 들어갔다.

“우리 산모님은 지금 어떤 점이 가장 힘드실까요?”

“저는 지금 딱히 힘들건 없고 병원 침대가 너무 딱딱해서 등이 아팠던 거 빼고는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럼 정말 다행입니다. 관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괜찮다고 이야기한 산모의 말을 의심했다. 몸에 대해 잘 모르는 누가 봐도 놀랐을 것이다. 온몸이 색소침착으로 뒤덮여 피부가 얼룩덜룩하였다. 색도 너무 진했다. 

본래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로 색소침착이 생긴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임신을 하면 여성호르몬의 분비량이 늘어나는데,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멜라닌세포자극호르몬 등의 여성호르몬이 피부 속 멜라닌 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에 얼룩덜룩한 반점이 생기게 된다. 이로 인해 자외선 흡수량도 임신 전에 비해 20배 가까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미나 주근깨 등이 생기기 쉽다고 한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목, 겨드랑이, 허리, 배, 가슴, 엉덩이 등 다양한 부위에 색소침착을 경험한다. 어떤 산모들은 다리전체에 물결무늬로 색소침착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마다 색소침착의 정도도 다르다. 

임신하고 예기치 못한 변화들을 많이 겪게 되지만 그 변화 중 가장 기분 좋지 않은 변화가 색소침착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출산하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대부분 알고 있기에 피부가 얼룩덜룩 되더라도 그나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국소부위가 아니라 전신이 색소침착이라…

나의 가슴속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을까란 궁금함과 이 산모에 대해 이해해 봐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이유를 알아내야겠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어.!’

“산모님,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산모님 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더 효과적인 관리를 해드릴 수 있어서요.”

“네, 선생님. 물어보셔도 되세요.”

“혹시, 색소침착은 임신 후 몇 주부터 생겼나요? 얼마나 빠른 속도로 번졌나요?”

“아~선생님, 제 몸에 색소침착은 임신 전부터 그랬어요. 처녀 때부터 생겼어요.”

“네? 그럼 몇 년이나 됐을까요?”

“한 5년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샤워하고 거울을 안 봐요. 너무 괴로워서요.”

내 마음도 괴로워졌고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임신 때 생긴 국소부위 색소침착은 출산 후 스톤테라피를 통해 냉기냉습배출 프로그램만 적용해도 많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신의 색소침착이기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싶어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테라피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첫 관리는 아프다고 했던 등의 긴장감을 빼고 출산과정에서 힘들었을 근육의 피로감을 푸는데만 집중하였다. 등이 아프면 잠을 잘 못 자기에 마지막 부분은 잠을 조금이라도 잘 자는데 도움이 되는 디톡스 시간을 추가해서 진행했다.

“산모님, 오늘 온몸의 긴장감을 내려놓고 푹 주무실 수 있게 해 드리는 관리를 해드렸어요. 룸에 가시면 샤워를 피해 주세요. 물은 넉넉히 드시고요.”

“네~선생님. 저 지금 한결 가볍고 개운해요. 감사합니다.”



왜 그런 거지?
어떻게 하지?


산모의 마음은 개운할지 몰라도 나의 마음은 너무 무겁고 찹착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온갖 색소침착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하였다. 색소침착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이 궁금했는데 누구나 알만한 기본적인 설명들이었다. 

“색소침착의 원인은 호르몬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산부는 색소침착과 같은 피부의 변화가 생긴다는 설명 말고 난 더,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알길 원했다. 하지만, 없었다. 색소침착 완화를 위한 제품들 소개만 가득했다. 머리를 쥐어짜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두 번째 관리를 시작하였다. 

“선생님, 조리원 침대가 병원침대보다 좋아서인지 아니면 선생님이 정말 등을 잘 풀어주셔인지… 정말 등이 편안해졌고 잠도 잘 잤어요.”

“샤워는 어제 안 하셨죠? 오늘 관리하고도 좀 미루어 주세요. 내일 일요일이라 관리 없으니 내일 샤워부탁드려요.”

조리원 입실 초기라 아직 부종이 심해서 최대한 부종을 완화시키기 위한 관리에 나의 손은 집중하였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산모의 피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떻게 하지?’, ‘왜 이렇게 심한 거지?’, ‘임신 전부터 왜 생긴 거지?’ 라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집착하기 시작하였다. 



저 색소침착이 옅어진 거 같아요!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이다.

산모와 세 번째 관리가 시작되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잠을 잘 주무셨나요?”

“선생님, 그럼요. 너무 잘 쉬었어요. 그리고 선생님… 제 피부 색소침착이 좀 옅어진 거 같아요?”

“네? 정말요?”

나는 너무 놀래서 산모의 몸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뭔가 옅어진 느낌이긴 한데… 진짜 옅어진 게 맞을까? 내 눈을 의심하며 산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모님, 그냥 산모님 기분 아닐까요? 뭔가 좋아진 느낌 때문에 다 좋아 보이는…. 일단 더 지켜볼까요?”

나는 산모님의 말에 속으론 너무 좋았고 기적 같았지만 호들갑 떨다가 괜히 변한 게 아닐까 봐 엄청 스스로 자중하였다. 

주말이 지나고 부종은 많이 빠졌지만 남아있는 부종을 완전히 빼기 위하여 냉기냉습관리를 하고 노폐물 배출의 끝장을 보기 위한 디톡스까지 또 진행하였다. 

네 번째 관리가 되었다. 산모는 더 환해진 얼굴로 나에게 활짝 웃었다.

“선생님, 저 색소침착이 진짜 옅어진 게 맞아요! 옷 갈아입는데 진짜 피부색이 달라졌어요!”

“정말요? 확인해 봅시다.”

이번엔 나도 들떠서 산모의 피부를 더 자세히 보기 시작하였다.

“정말 옅어진 거 같아요. 어떻게. 어떻게… 정말 옅어졌어요.”

우리 둘은 진짜 테라피실이 떠나갈 만큼 신났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색소침착이 옅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다’라는 속담이 이 경우에 어울리지 않나 싶다. 

처녀였을 때부터 생겼던 색소침착이 출산 후 테라피를 받으며 옅어졌다?! 분명히 내가 한 관리가 산모의 몸속에서 알 수 없는 방정식을 풀어냈다고 믿었다. 

내가 이 산모에게 했던 관리는 냉기냉습 배출관리인데 혹시 여기에 진짜 답이 있는 것인가 싶어서 다섯 번째 관리부터는 냉기냉습 배출 관리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하루하루 색소침착이 어디가 얼마큼 없어졌는지 찾는데 우리 둘은 완전 재미가 붙었다. 이런 변화에 산모도 더 욕심났는지 샤워도 참아가며 끝까지 잘 지켜주었다.  


이 산모로 인해 나는 색소침착을 임신으로 인한 당연한 변화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집요하게 파야할 목적의식을 심어주었고 이렇게 색소침착 해결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엔 색소침착완화 제품들의 원리가 적혀있는 업체들의 제품 상세페이지까지 다 읽어보았다. 색소침착 완화를 위해 테라피에 적용할 원리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또, 여러 출처의 정보들도 읽어 보았다. 계속 공부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점들이 있었다. 그것은 수분 섭취와 수면 및 휴식을 취하는 것이 혈액순환과 호르몬 균형을 가져와 색소침착을 예방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냥 누구나 알만한 뻔한 좋은 말이었지만 내가 하는 테라피안에서 혈액순환과 호르몬 균형을 잘 맞추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더 찾기 시작하였다. 색소침착이 생긴 위치와 그 위치에 있는 장기들의 상태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궁금해서 피부생리에 관한 전문책들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색소침착이 생긴 산모들의 피부를 더 뚫어져라 관찰하고, 피부결도 더 자세히 만져보았다. 혈액순환과 관련이 가장 깊은 것은 물이기에 마시는 물의 종류와 온도와도 관련이 있는지 체크하였다.

“얼음물을 좋아하세요?” 

“얼음 없어도 찬물이면 괜찮으세요?”

“상온의 물도 상관없어 잘 마시세요?” 

“평상시에 어떤 물을 주로 드세요? 정수? 아아? 탄산음료? 차?”

이렇게 기본적인 생활습관도 물어보며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임산부 색소침착에 대한 나의 견해가 나름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차가운 물보다는 따뜻한 물 마시기를 권하고 무조건 쉬기보다는 적절한 스트레칭을 추천하였다. 출산 직후 색소침착이 있는 산모들에게는 잦은 샤워보다는 적절한 노폐물 배출을 돕기 위한 샤워주기를 정해 개인별 맞춤 관리를 하였다. 

이제는 한번 변한 피부색이 돌아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임산부들이 지켜야 할 산전 셀프팁도 정리하여 조금은 격하게 권장을 한다. 

“얼음물은 바로 끊어주세요! 얼음덩어리 없는 정수기의 냉수물까지는 괜찮습니다.”

“하루에 10분 정도라도 팔과 다리를 시원하게 스트레칭하며 정체된 곳이 없도록 쫙쫙 한 번씩 펴주세요!”

이렇게 산전에 이 셀프팁을 실천하도록 독려하고 산전 테라피는 면역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렇게 관리한 산모들은 정말 색소침착이 잘 생기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정보를 몰라 색소침착이 이미 심하게 생긴 경우에는 산후테라피시 무조건 냉기냉습배출관리를 진행하고 몸에 남은 노폐물을 끝까지 배출시키려는 의도로 관리 끝난 후, 10분간 더 디톡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많은 여성들이 임신 후 색소침착이 생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작은 생활 속의 변화가 우리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한다. 



이제 샤워하고 전신 거울로 제 몸을 볼 자신이 생겼어요!


여덟 번째 관리를 마친 날, 그녀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 저요… 이제 샤워하고 전신 거울로 제 몸을 볼 자신이 생겼어요. 신랑에게도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요. ”

코끝이 찡해왔다. 그동안 혼자 얼마나 말 못 할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옷 안에 숨겨진 피부의 문제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고민상담을 할 여성은 흔치 않을 것이다. 

내가 산모의 아니 한 여성의 자존감을 제대로 새우는데 도움이 된 거 같아서 너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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