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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인 Nov 09. 2022

구와 마젠타

1부-3장

3장




 민서, 소정이 들어오는 소리에 급하게 핸드폰을 집어넣는다.
 소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온다. 


민서    무슨 일이야?

소정    별거 아니야. 그냥, 학원에서 오래. 

민서    학원? 설마, 미술 학원?


 민서, 소정에게 달려온다. 


민서    네가 보냈던 그림 봤구나! 드디어! 뭐 보냈어? 뭐라고 해? 왜 오라는 거야?


 소정, 대답하지 않는다. 


민서    제대로 유학 준비하려는 거, 맞지?


 민서, 모른 척하는 소정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민서    갈 거지? 


 소정, 모른 척한다. 민서, 끈질기게 따라간다. 
 좁은 집에서 술래잡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민서와 소정.


민서    (헉헉대며) 갈 거지?

소정    (헉헉대며) 안 가. 돈 없어. 

민서    겨우 그런 이유야?

소정    겨우 아니야. 큰 이유야.

민서    학원비가 얼만데? 

소정    말 안 할래. 


 민서, 소정을 잡는 데 성공한다. 

두 사람, 가볍게 실랑이를 하고, 소정은 마지못해 귓속말로 금액을 이야기한다. 


민서    내가 줄게, 금방 버는 거야 그거. 안 되면, 


 본인의 입을 벌리고 진지하게 묻는 민서. 


민서    근니라도 파라서 주께. (금니라도 팔아서 줄게.)

소정    몇 개 있는데?

민서    둔 개. (두 개.)

소정    택도 없을 것 같애.

민서    치…….


 사이.


민서    가 보기만 하면 안 돼? 너 쭉 상담받고 싶어 했잖아. 


 소정과 민서, 한참을 마주 보고 있다. 

소정, 고개를 끄덕인다.


민서    (소정을 안아주며) 잘 생각했어! 언제, 언제 오래? 

소정    통화 끝나고 오랬으니까……. 

민서    옷 뭐 입고 가야 하지? 


 민서, 급하게 일어선다. 

옷더미를 뒤지며 하나씩 냄새를 맡아보는 민서. 


민서    이건 마라탕 냄새가 나. 이건 살라미 햄이랑 올리브 통조림 냄새가 심하고, 저건 너무 낡아 보여. 어떤 게 좋을까……. 깔끔하게 입고 가야 하잖아, 알바 면접 갈 때보다 더. 맞지? 


 민서, 본인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벗어주고, 자신은 목 늘어진 티셔츠를 꺼내 입는다. 

그리고 옷더미에서 말끔한 바지와 블레이저를 찾아내 함께 소정에게 건넨다. 

소정, 받아 들어 입는다. 

양팔을 벌리고 민서에게 보여준다. 


소정    어때?

민서    괜찮은데.

소정    없어 보이진 않지?

민서    왜, 누가 없어 보인데?


 소정, 발을 꼼지락거린다.


소정    양말에 구멍 났어.

민서    다른 양말 없어?

소정    없어.

민서    괜찮아. 양말은 아무도 신경 안 써.

소정    신경 안 쓰다가 이 꼴이 된 건데…….

민서    아, 그러면. 이걸 쓰고 가서, 


 민서, 스카프를 꺼내온다. 


민서    백화점에서 산 거야, 이거. 


 그리고 스카프를 본인의 목에 아주 요염하게 감쌌다가 내려두고, 감쌌다가 내려두길 반복한다. 


민서    사람들의 시선이 스카프에 집중되도록, 이렇게 쉭. 

  
 소정, 스카프를 건네받고 따라 한다. 


소정    쉭.

민서    좋아.

소정    (계속 움직이며) 양말에 집중돼? 집중되냐고.

민서    아니.

소정    좋아!

민서    잘하고 와. 원래 하던 것처럼 하고 와.

소정    그냥 상담만 받고 오는 거야. 

민서    상담받으면 할 수밖에 없을걸. 


 소정, 대답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기만 한다. 


소정    다녀올게. 


 소정, 쉭쉭 거리면서 방에서 나간다. 

민서,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다가 퍼뜩 무언가 기억나 달려 나간다.


민서    소정아!

소정    쉭?

민서    그 그림도 꼭 보여줘. 벽화 봉사 때 그린 장미! 나랑 있을 때 그린 거라고, 네 역작이라고 해!


 소정, 분명 민서의 말을 들었지만 계속 쉭쉭 거리기만 한다. 
 소정의 뒤로 파란색 가벽이 보이고, 소정은 그 벽을 가로질러 무대 밖으로 빠져나간다.  
 민서는 소정이 아예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소리친다. 
  


 민서
    나는 말이야! 아직도 그 그림이 생생 하단 말이야, 마치 생화를 본 것처럼! 그런 게 진짜 그림 아니야? 


 민서, 뿌듯하게 자리에 앉는다. 


민서 틀리지 않았어, 내가 틀리지 않았다니까! 


 사이.


민서    소정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갈 거야. 히. 비엔나소시지도 많이 먹겠지? 


 민서, 진지하게 주저앉아 성호를 긋는다. 

방향이 살짝 틀린 성호다. 


[화면에 소정의 꼼지락대는 발가락이 보인다.]

[정확하게는, 구멍 난 양말이.]


민서 사랑하는 하느님. 우리 소정이 잘 돌보아주세요. 자신감을 가지고 보고 올 수 있게요. 소정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고 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사실 기도 반영이 늦다고 생각해왔는데 드디어 제 차례가 왔나 봐요. 제 주식도, 빨간색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시죠? (손가락 위로) 쭉쭉…… 올라가게…… 소정이를 위해 쓸 거예요. 저를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을게요. 


 [소정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계속 나오는 동안, 

[옆에서는 선글라스를 낀 예수 동상이 튜브에 앉아 붉은 급류 타기를 하고 있는 영상도 보이고 있다]


 민서, 두 손을 다시 모은다. 


민서    나무 관세음보살……. 부처님도 도와주세요. 너무 속세적인 소원이라고 지나치지 마시고…… 부처님은 왕자님 출신이시라 이런 거 이해 못 하실 수도 있지만요. 저는 정말 간절하거든요. 오늘 소정이 오면 딱 보여줄 거예요. 너 유학 가도 된다고. 그럴 자격 있다고. 이거 좀 보라고. 


 [소정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계속 보이고 있다.]

[정확하게는, 구멍 난 양말이.]

 
 소정이 듣고 있는 학원 원장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들려온다. 
 민서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관객들이 들을 만큼은 또렷하다. 
 
 [기본기가 있어요. 기본기는 있는데 왜 전반적으로 탁할까? 여기도 봐, 유화라는 게, 물감을 두껍게, 아끼지 말고 올려야지. 지금은 임파스토를 하려다가 작가가 겁이 나서 웨트 온 드라이로 튼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아끼지 말아야 돼요, 미술을 하려면. 조금 세게 이야기하면 지금 이 그림, 순수 회화로 밀고 나가기에는 트렌디하지 않단 얘기거든. 널렸어, 홍대 졸업한 친구들은,]


민서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소정이가 유학 갈 수 있을 정도로만……. 이번 일이 잘 풀려서 소정이 유학 가면……. 하느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거 할게요, 전도! 부처님한테는 백팔 배! 


 민서, 비장하게 핸드폰을 꺼낸다. 


민서    저, 지금 봅니다? 볼 거예요. 그러니까 두 분 다, 


 민서, 하늘 본다. 


민서    제가 영, 하면. 


사이.


민서    차 해주시는 거예요, 아셨죠. (작게) 영, 


 사이.


민서    영, 


 사이.


민서    영, 


 사이.


 심호흡을 하며, 화면을 확인하는 민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비가 많이 올 때만 들린다는 둥, 둥, 둥, 북소리도. 


 번개가 친다. 

화면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미동도 없이 서 있던 민서는 비명을 지르다 쓰러지고 만다. 
 
 다시 학원 원장의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이 년만 학원에서 빡세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늦지 않아, 재능 있는 작가는.]

 
 [화면 모두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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