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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민 Apr 19. 2023

일과 사랑 대신, 소모임에 열정 쏟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모임장

 미국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를 좋아한다. 초짜 인턴들의 일과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 속 그레이와 크리스티나는 일도 사랑도 열정적으로 한다. 미국 드라마에는 그런 인물이 많다. 이른바 '미드 폐인' 출신인 나는 알게 모르게 미드 속 인물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따로 정리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내 꿈은 크게 두 가지였다.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과 사랑을 찾는 것. 모임을 만들 당시 나는 그 둘 모두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사랑, 4년 가까이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10개월 정도 지난 때였다. 일, 고등학교 때부터 되고 싶던 기자가 됐다. 하지만 말하자면 긴 사내 부조리를 겪은 끝에 배정된 부서 업무는 꿈꾸던 기자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1편에서 썼듯이 소모임 앱에 가입한 계기가 "연애는 싫지만 사람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면, 스터디 모임을 만든 동기는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왔다.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바라왔던 기자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허황한 꿈은 마음 한편에 둔 채, 진로 재탐색을 시작했다. 게으른 나의 탐색 길은 멀리 가지 않았다. 언니의 언어교환 사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 한국어교원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스터디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러던 중 소모임 앱과 스터디 모임을 알게 돼 결국 직접 개설까지 했다.


 모임 개설 당시 나는 굉장히 열정적인 모임장이었다. 19명이 참석했던 첫 주말 정모 후기에서 나는 스스로를 '일 벌이기 좋아하는 몸장'이라고 소개했다. 개설 5일 차 초짜 모임장이 19명이나 되는 낯선 이를 이끌고 주말 밤 강남 한복판을 돌아다녔으니, '벌였다'는 표현 과장이 아니었다.

2016.10.2 '잘노공' 첫 주말 정모 뒤풀이

 첫 대형 정모는 어버버와 허덕임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적고 공부하기 좋다는 블로그 글만 믿고 처음 간 카페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모임 시간보다 1시간 먼저 왔던 덕분에 몇 자리는 맡아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명의 자리를 맡는 일은 노동에 가까웠다. 낮 1시에 카페에 도착했지만 오후 6시까지 공부한 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스터디는 고생스러웠지만 뒤풀이는 자신 있었다. 멋져 보이는 퓨전 한식 주점에 20명 단체 예약을 미리 해놓은 덕분이다. 처음 보는 사람 18명을 이끌고 당당하게 강남 골목을 가로질러 뒤풀이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예약자 목록에 내 이름이 없었다. 알고 보니 같은 주점 브랜드의 가로수길점에 잘못 예약한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예약한 지점에 전화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니 식당 측은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괜찮다고 이해해 줬다. 대규모 '노쇼' 진상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다니, 그날 나는 멍청했지만 인복은 있었나 보다. 다행히 강남점에도 단체 자리가 있어서 우리는 무사히 뒤풀이를 진행할 수 있었다.


 혼돈의 첫 주말 정모를 마치고도 나의 무리수는 계속됐다. 바로 다음날에도 대규모 스터디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스터디에서 얻은 교훈 덕분에 이날은 20인실 단체 스터디룸을 예약했다. 스터디 후 카페(다단계와 데이트를 했던)에서 다 함께 빙수를 먹고 2차로 맥주 한 잔씩 한 뒤 일요일을 마무리했다.  


2016.10.3 스터디
2016.10.3 스터디 후 뒤풀이 2차
2016.10.3 스터디 후 뒤풀이 3차

    초심은 꽤 오래갔다. 대규모 정모로 주말 이틀을 꽉꽉 채운 뒤에도 식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주말마다 스터디를 열고 밤늦게까지 뒤풀이를 했다. 평일에 스터디를 여는 운영진은 따로 있었는데, 저녁 시간이 빌 때면 평일 스터디에도 참석했다.      


 몇 개월을 쉬지 않고 달리면서도 나는 지칠 줄 몰랐다. 원래 놀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노는 걸 좋아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근무 시간에 쏟는 열정과 체력이 없었던 덕분이다. 일이 적고 재미도 없었던 당시 부서에서, 나는 쏟아낼 열정도 체력을 쓸 의지도 없었다. 근무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소모임 정산, 회원 관리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나를 소외된 부서에 보낸 회사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내 평판과 커리어, 근무 시간 만족도, 어느 것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제 살 깎아 먹는 복수였다.      


 하지만 일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잘노공이 채워줬다.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잘노공은 직업적 불만족에서 오는 결핍을 채워주는 뛰어난 수단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만든 모임을, 하기 싫은 일만 하느라 쌓인 체력과 열정으로 운영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현실이었다.      


 나는 잘노공을 개설하고 초창기 몇 개월을 내 인생 중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몇몇 시기 중 하나로 꼽는다. 여전히 열정을 쏟을 일과 사랑 둘 모두를 찾지 못한 상태였지만, 일과 사랑에 쏟을 열정을 모두 합해서 잘노공이라는 취미에 쏟았던 때였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릴 때면 과거 전성기를 자랑하는 꼰대처럼 들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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