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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편] 25년 마지막 입시의 관문을 지나다

입시의 마지막 날 보드게임을 하다

by 은퇴설계자

1년 11개월을 이어온 딸아이의 마지막 시험이 지난 일요일 끝났다.


딸아이가 제일 후련하겠지만,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이 내게도 스며든다.


아직 입시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기에 모든 게 조심스럽지만,

아이에게 건넨 나의 첫마디는 "Catan 이제 할 수 있겠네, 오늘 바로 할 수 있을까?"


정말 철없는 아빠다.


모든 힘을 짜내 힘겨운 시험을 치러낸 아이에게 건넨 이야기가 보드 게임하자라니.


카탄이미지.jpg 보드게임 Catan.

모든 수험생의 부모들은 알 것이다.


시험은 잘 봤니. 올해는 합격권이니.. 정말 궁금한 내 속 이야기는 물어볼 수 없다. 그냥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초등학생 시절, 캐나다에 2년 머물던 때에 겨울밤이면 가족들이 모여 보드게임으로 웃고 울면서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초등생이던 아이들을 게임으로 울리는 아빠였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전쟁게임 "Risk"라는 게임을 하면 누군가 울어야 게임이 끝났다.

반면 Catan은 동맹 같은 개념이 없이 본인의 전략적 구상과 주사위의 행운이 잘 따라주면 승리할 수 있기에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 녀석은 Catan 하자는 말에 다다음주부터 기말고사라 힘들 것 같다는 반응이다.


"음.. 기말고사! 그래, 중요하지. 그러니까 다음 주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오늘은 Catan 한판 해보면 어때"


작년이 좋았다.


한 명은 재수생, 한 명은 고3 수험생. 모든 시험이 끝나니 둘 다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저 입시 결과만을 기다려야 했던 긴 겨울밤은 Catan으로 채워졌다.


아들은 합격했고 딸은 오빠의 뒤를 이어 재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11개월 동안 다시 시작된 딸아이의 수험생활이 이제야 끝난 것이다.


이런 밤엔 Catan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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