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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리 성장의 브레이크, 세금이라는 복병

세금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퇴직연금

by 은퇴설계자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미국 주식 이야기를 한다. 엔비디아 같은 시총 1위 기업이 하루에 10%씩 오르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시장. AI가 세상을 집어삼키는 지금, 미국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은 어쩌면 'AI 시대의 생존 투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이 화려한 파티장 뒤편에는, 투자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조용한 암살자'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양도소득세라는 세금이다.


수익의 22%를 떼어내는 '녹아내리는 눈덩이'


해외 주식 직접 투자는 매매 차익의 22%를 양도소득세로 내야 한다. 연간 250만 원 공제가 있다지만, 1억, 2억을 굴리는 은퇴 준비자에게 이 공제 한도는 금세 채워지는 금액이다.

문제는 단순히 세금을 낸다는 사실이 아니다. 세금을 내는 타이밍이 문제다.


변동성이 큰 미국 시장에서 우리는 수시로 '마켓 타이밍'을 고민한다.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는 과정에서 수익을 실현할 때마다 22%의 세금은 꼬박꼬박 징수된다.


워런 버핏은 투자를 '눈덩이 굴리기(Snowball)'에 비유했다. 눈덩이가 커지려면 계속 굴러가며 눈이 붙어야 하는데, 매년 눈덩이의 22%를 뚝 떼어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떼어낸 눈(세금)은 더 이상 굴러가며 커질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복리 성장의 브레이크다.


10년 뒤, 중형차 한 대 값이 사라진다 (시뮬레이션)


이 '브레이크'가 얼마나 강력한지 숫자로 확인해 보자.

은퇴 자금 1억 원을 투자해 매년 10%의 수익을 낸다고 가정해 보자.

A. 일반 계좌 (직접 투자)

: 매년 수익을 실현하고 22% 세금을 뗀 뒤 재투자한다. (실질 수익률 7.8%)

B. 퇴직연금 계좌 (과세 이연)

: 세금을 내지 않고 전액 재투자하며, 10년 뒤 인출 시 저율 과세(5.5%)를 적용받는다.

10년 뒤, 두 계좌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세이연의 효과 비교표


똑같은 종목, 똑같은 수익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떤 주머니'에 담았느냐에 따라 3,8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이 차이가 난다. 중형차 한 대 값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일반 계좌에서 사라진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매년 낸 세금과, 그 세금이 낳았을 '미래의 복리 수익'이 함께 증발한 것이다.


과세 이연: 국가가 허락한 가장 강력한 복리 엔진


하지만 퇴직연금(IRP/DC) 계좌에서는 수없이 많은 거래를 해도 인출할 때까지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를 '과세 이연'이라고 한다. 이는 국가가 우리에게 주는 '무이자 대출'과 같다. 원래 냈어야 할 세금까지 내 계좌에 남겨두고, 그 돈으로 또 돈을 벌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SPY나 QQQ 같은 미국 상장 ETF를 직접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대안은 충분하다. 'TIGER 미국S&P500'이나 'KODEX 미국나스닥100' 같은 국내 상장 해외 ETF를 활용하면 된다.


지수를 추종하는 효과는 같지만, 세금 효과는 천지 차이다. 나중에 연금으로 수령할 때 내는 세금은 고작 3.3% ~ 5.5%에 불과하다. 22%의 양도소득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저렴한 비용이다.


은퇴자의 투자는 '그릇'부터 달라야 한다


화려한 수익률을 자랑하는 엔비디아나 테슬라를 보며 가슴이 뛰는가? 하지만 진정한 투자의 승자는 '어떤 종목'을 샀느냐보다 '어떤 그릇'에 담았느냐에서 결정되기도 한다.


당신의 은퇴 자금은 지금 복리 엔진을 달고 질주하고 있는지, 아니면 세금이라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달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 볼 때이다.


10년 뒤 3,800만 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신이 내린 종목 선정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선택한 계좌의 종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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