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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Dec 07. 2022

불을 켜놓고 외출하는 마음




불을 켜놓고 외출하는 마음을 아나요.

-아뇨, 그게 뭐죠?

아아 모르시면 됐어요.


뭐야, 그럴거면 말을 꺼내지말지. 나는 그가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러나 머지않아 그가 무례했던  아니라 오히려 무척이나 예의바른 사람이었단  깨닫는다. 그는  배려심 깊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모르는 채로 두는게 훨씬  좋은 상황도 있다는 . 나는 오늘 불을 켜둔채 밖을 나섰다.





어딘가가 간지러우면 긁어요, 내버려둬요?

-음……

미친듯이 긁으면 그 순간은 시원할 거 같은데 그럼 무조건 안 좋다는 거 알잖아요.

-그렇긴 하죠.

난 내버려둬요.

-어른이시네요.

긁어요?

-네, 참는데까지 참다가 긁어요.

아니 그럴거면 그냥 참지 말고 긁지.

-그러게요, 그래도 이제 다시 내버려두려고요.

그래요?

-네, 그래요.


멍청한 대화 -

나는 긁지 않고 내버려둘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아니, 실은 영영 안 긁고 둘 수도 있다. 아주 잘.





오랜만에 다시 그의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 읽고나서 나도 모르게 "미친놈"하고 뱉었던 작가의 글이다. 왜 그의 글이 다시 읽고 싶었을까. 그의 글은 역시나 '미친놈'답다. 그의 괴기스러움과 억지와 궤변과 배째라식의 유머를 나는 참을 수 없다. 여전하다. 몇 문장도 채 못가 속에선 '미친놈'이란 단어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래도 이리도 유쾌할 수가. 나는 기꺼이 빠져든다. 이 시간이 즐겁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장을 넘기는 이 순간이. 미친듯이 바쁜 일상 속 이런 여유를 찾게 해준 그에게 감사를, 아니 그의 또라이(?)스러운 글에 감사를.




몇주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자 작가의 글을 읽었다. 문장이, 섬세하면서도 거칠었다. 고급스럽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조악했달까.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만, 내가 좋아하는 내 취향의 문장들이 존재하는 페이지만을 간직하기로 했다. 우리는 같은 문장을 읽는다. 내가 느끼는 것과 네가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 표현에 대한 감각도, 시점도, 장면을 상상하는 질감도 우리는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거의 비슷할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네가 느끼는 걸, 너는 내가 느끼는 걸 느낀다고. 그래서 같은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퍽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가 재밌다고 한 드라마를 본다. 나는 그가 느낀 걸 느낄 것이다. 취향을 공유한다는 건 역시나 가장 고등의 상호작용이라고 느낀다. 나는 당신의 새 아이패드 메모장에 슬그머니 글을 한 편 써놓고 언제 볼 건지 생각지 않는다. 언젠가 보겠지 - 하면서. 언제보든 상관이 없는 그 글을 그렇게 슬그머니 -






사람은 긴장이 풀리면 늙는대.

그 말을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믿지 않는다. 긍정적이면 마냥 좋을거라 생각했는데 간혹 아닐때도 있음을 배운다. 그날 나는 조금 슬펐다. 내가 전적으로 옳을 수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거의 매순간, 깨닫는다. 이렇게 사람은 억지로 겸손과 겸허를 학습한다.




상상력은 때론 독이 된다. 자꾸만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려 갈망하게 되니까. 그건 대부분 아주 좋은 기폭제가 되지만 무언의 결핍을 낳기도 한다. 다시 그 카페에 가야겠어. 가서 의미없는 수다라도 실컷 떨고오면 좀 나을 것 같아. 역시나 그곳은 충분히 높고 전망이 좋다. 커피는 맛없다. 커피가 맛없는만큼 맛있는 수다를 떨자, 그럼 말끔하게 상쇄되고 말테니 - 나는 생각한다. 내년엔 얼굴 좀 자주보자, 하는 말에 무심결에 그래, 하고 대답하려다 나는 그냥 웃어넘긴다 하하핳 - 하고.






나는 몇달 전에 전 회사 선배와 연말에 약속을 잡았고, 그건 충분히 먼 미래의 시점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미래가 코앞에 도래했음에 새삼 놀란다. 겨울은 게으르고도 부지런한 계절. 나는 몸을 숨기고 웅크리고 추위에 대비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에도 바쁜데 필연적으로 모든 ‘힘찬 마무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법이라 그런가. 잘 끝맺기 위한 무수히 많은 기다림들과 정확히 그 지점에서 재개될 또 다른 시작의 순간들. 그래서 연말엔 모두가 바쁜걸거야. 나는 조소한다.







외출 후 집에 도착했더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불을 켜고 외출하는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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