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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Nov 14. 2021

무능한 상사가 무능한 직원을 만든다

상호이해 따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는 화법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젊은 대표와 같이 일할 기회가 있었다.


대표의 매니징 아래 같이 일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내가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1인 다역이 필요한 일이었다.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고

다른 일도 병행하다 보니 

체력적 한계를 느꼈다.


한 달 즈음 지나니

대표가 나를 배려해주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면서도,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불편함과

내가 느끼는 힘든 점에 대해

상의하고 싶은 사항이 분명히 생겼다.



하지만

대화의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고,


나는 결국 과로로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신경성 위경련'

이라고 했다.


병명만 들어도

신경성 위경련이 생길 지경이다.


나는

쓰러진 당일과

그 다음날 까지만 쉬고 출근하겠다고 했고


이틀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어도

여전히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며

명치가 거대한 쇠꼬챙이로 뚫는 듯 아파서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었지만,

일단 일 하러 나갔다.


다들

나를 보자마자 

"괜찮아요? 아직 안 괜찮아 보이는데..."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하고 걱정했지만


그는 나를 흘끗 보더니

"핼쑥해지긴 했네."

라고

툭 던지듯

한 마디 했다.


출근했을 당시

내 몸무게는

40kg이 채 되지 않았다.



핼쑥해지긴 했다니,

그럼 뭐

거짓말로 아프다고 했을까요?



나는 일하는 중에도

몇 번이나 어지럽고 속이 쓰려 휘청댔지만

최대한 티를 안내려 노력하며

낑낑대며 일했고,

오늘만은

더 늦기 전에 대표와 얘기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정말, 정-말 다행스럽게도

"얘기 좀 합시다."

하고 불렀다.


그가

'네가 아픈 바람에

이틀 동안 일에 얼마나 큰 지장을 초래했는지 알고는 있냐'

따위의 말로 나를 윽박지른다고 해도

나는 그 대화하자는 소리가 반가웠다.



그런데 개뿔.

그는 얘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화의 기본은 '소통'이고

'소통'의 기본은

'상호 이해'다.


그게 아니고선,

서로가 하는 말은

그저

'개소리의 향연'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상황을 설명했다.



"아, 저 지금 이해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자

저런 말이 날아왔다.

아니, '튕겨져' 나왔다.


말이 튕겨져 나온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때 나는 진심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저 사람은 '물리적'으로 내 말을 듣고 있지 않구나.


진짜 '벽'이랑 대화하는 기분,

진심으로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 5, 60대 꼰대와 대화해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아무리 대화가 안 통해도

적어도 저 사람이 내 말을 듣고

그에 대한 반응이란 걸 하고 있다, 는 느낌은 받았었는데


뭔 말만 하면

"변명으로 들려요."


"저 이해시키려는 거예요?"


이런 말은, 


정말 차라리 고요한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아니, '대화'를 하자고 하지 않았나.


자기 입장에서,

자기 기준에서,

자기 생각만 관철시키려 하면서

왜 애초에 '대화'를 하자고 했는지?


"그런 건 힘든 축에도 못 껴요."

네, 그러시겠죠.

근데 제 기준에서 힘들다는 거예요.

저는 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사정에 대해 말하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식이다.

'너 힘든 거랑 나랑 같이 일하는 거랑 뭔 상관?'

이런 식이다.


그니까 같이 하는 게 힘들다고요.



그냥 애초에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어떤 것이 힘든지

이런 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아파서 쓰러졌고

혹여나 일에 피해 줄까봐

몸도 채 못추스르고

바쁘게 복귀했는데

그런 건 그저 성가신 일일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불만,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

일이 힘들지도 않은데 왜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질타

그런 것이 하고 싶었을 뿐.


나보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곳에

'대충 시간이나 때우러'간 적이 없다.

일이 없어도 찾아서 하려고 했으며

항상 벅차게 

바쁘게 

열심히 일했다.

내 몸 상태가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나.


힘들다고 픽픽 쓰러지는 사람은 아닌데,

정말 이번에는 많이

'벅찼다'

내가 계속 소화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나는 이 일에

엄청 '신경'을 썼고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신경성 위경련'이란

병을 얻었다.


그런데

'의지가 없다'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한 시간과 노력,

어떻게든 피해 주지 않게 하려고 했던 마음,

내 심적인 부담 따위를 한 순간에 뭉개버리는 말이었고

나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일할 의미를 상실했으며

이미 '무능한 직원'이라는 프레임에 갇혔구나, 를 실감했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당신은 아무 말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말 들어요."

라고 하고 설교를 늘어놓았다면

차라리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들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하면서.


나는 적어도 그 사람 입장을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게 보였겠구나,

하면서.

근데 이건 뭐.


분명

'얘기'좀 하자고 했고, 

나보고 먼저 할 말 없냐 물었고,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해보라고 했다.


나는 먼저 할 말을 하시라고 했고,

다시 나더라 먼저 말하라고 했다.


할 말 없습니다, 라고 하기엔 할 말이 많았다.


일단

몸 관리 내가 알아서 해야되는데,

이렇게 갑자기 아파서

죄송하다

라는 말로 말을 시작헀다.


하지만,

왜 체력적 한계가 왔는지

딱 한 마디 더했더니

바로

지금 자기를 이해시키려냐는 말이 날아왔다.


근데 전혀,

진짜 조금도 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왜 먼저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한 걸까.


애초에

자기 자신만의 결론을 지어놓고,

사람에게 '프레임' 씌워

멋대로 판단하고 이미 절대 '이해'따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서

'대화'를 하자니?

'얘기'좀 하자니?


이런 게 당신의 세계에서는 대화인가요,

얘기인가요.


그냥 뭐라고 지껄이나 들어나보자,

이런 심정이었던 걸까.


그랬다면 더 소름이다.



나도 어리지 않은 나이고,

그 사람 역시 그렇다.


상대의 기본을 지적하기 이전에

자신은 기본을 갖춘 사람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기준이 잘못된 건 아닌지,

내가 너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건 아닌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적어도 딱 '한 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처 생각을 못했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적어도

한 번은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사람도 

그런 '대표'라는 책임있는 자리가 처음이라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고

잘 모를 수 있다.


그런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직장동료와 소통하는 방식은

어떤 리더로서,

한 사람의 상사로서

그리고 소통을 바탕으로 조직을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한 책임자로서의 자세로는

완전 '틀렸다'.


나는 명백히 말할 수 있다.


그건 틀렸다.



'물리적'으로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들으려 하지 않는

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해봤자 그건 '변명'

어떤 상황이든

그 사람에겐 '엄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힘든 축에도 못 끼는 일'


진짜 입 꾹 다물고,

침묵할 수밖에.





한결같이 나쁜 사람,

한결같이 비겁하고 얍삽한 사람,

한결같은 쓰레기,

한결같은 다혈질,

무튼 이런 최악의 성질들 보다도

가장 상대하기 힘든 건


'일관성 없는 사람'이다.


이랬다 저랬다 말 바꾸는 사람이다.



아니,

하지 말라면서

왜 안 하냐고 묻는다.


아니,

해도 된다면서

왜 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이러쿵저러쿵 이유를 얘기하면

'변명'이라 치부한다.


그게 말이 돼요? 하고 반문한다.



아니, 어쩌라고요.


당신이 한 말들을 녹음해서 들려줄 수도 없고.

진짜.



직원이 

'무능한 직원'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상사는 직원을 '무능'하다 의심한다.

무능한지 아닌지 테스트 해보자는 심정으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을 시킨다.

직원이 '무능'한 상사도 처리하지 못하는 일에 어쩔 줄 몰라 작은 사고라도 치면

그걸 놓치지 않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점점 직원을 무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런 상사의 불신이 직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직원은 자괴감에 빠지고 일할 의지를 상실한다.

직원은 마침내 진짜 무능한 직원이 된다. 




"무능한 상사가 무능한 직원을 만든다"


그건 너무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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