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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ug 21. 2023

습관적 스노비즘





'사모펀드와 M&A트렌드'같은

속물적이기 그지없는 책을 사서 한 손에 들고는

고상하기 그지없는 미술작품을 감상했다.



그림을 지그시 들여다보고 

감상하면 할수록


사모펀드와 M&A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지만,


교보문고를 나서는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와

PE트렌드를 분석하고, 재평가되고 있는 PEF에 대한 내 해석을 정리해야 될 터였다.

컷 - 하고 감독이 외치듯 

나는 스스로에게 몰입의 순간을 해제할 내적 외침을 가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이상하게 유독 한 작가의 작품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렸다.


그 작품의 제목은 왜 그것이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내 멋대로 아 이래서 이럴거야, 이런 걸거야 하면서 단정지었다.




비가 흐르는 이미지

찢겨진 책 페이지들이 바람에 날려 창문 밖으로 흩어지는 이미지

그런 잔상들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영향을 받았다는 책도

그 책의 저자들도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그 작가가 선정한 책 중에는 알베르카뮈의 시지프신화가 있었다.

부조리, 부조리, 부조리.

나는 카뮈를 생각했다기보다 요즘 부조리에 대해 부쩍 생각하고 있었다.


너는 내게 다시금 까뮈에 푹 빠졌다며 시지프신화를 다시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거기까진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가 진짜 책장을 넘기며 까뮈의 책을 읽었든,

유튜브에 검색해서 그와 관련된 영상 클립을 몇 개 봤든

그런 건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스노비즘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브르디외까지 끌고 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너니까.



자신의 지적허영을 내가 '습관적 스노비즘'이라 꼬집는다면

기꺼이 "그런가? 그런거같기도"

하고 가볍게 반응할 그는

분명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다.

그건 현대인에게 나쁜 덕목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만 그토록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도 

전혀 계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

그때 그 비속물적임이 극대화 된다.



그런데 그마저도 계산이었다면,

계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계산했다면,



그건 속물적인걸까 아닌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속물'의 반대말은 뭘까.

'속물적'이라는 말의 반의어가 존재하긴 하는걸까.

예술적? 낭만적? 고상한? 


어디까지가 속물적인 걸까, 속물적이지 않은 건, 그런 건...






요즘 뭐 때문에 불안해? 

-불안?

응.

-글쎄.

그렇담 요샌 어떤 새로운 걸 욕망해?

-욕망은 뭐 늘 하긴 하는데 새로운 거?

응, 새로운 거. 넌 항상 그 대상이 빨리빨리 바뀌니까.

-꼭 알랭드보통처럼 질문하네.






너는 내게 그러면 안 됐어,

나는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어느 책표지의 뒷면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황정은 작가의 책이었다. 그녀의 시니컬한 문장을 좋아하곤 했다. 

하지만 저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snobbish'하다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난 오히려 어느 정도의 지적허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걸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건 일종의 너의 '정체성'이니까. 그건 어느 때엔 너무 적절하고 너무 멋있기도 하고 너무도 필요하고 유용하기도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자신을 평가하는 모든 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사전을 가져야 한다"


니카노르 파라가 한 말이다.

그는 "시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만의 고유한 사전'이라.




나는 칠레의 어느 물리학자이자 시인이 한 말을 며칠씩이나 곱씹었다.






나의 사전에서 '습관적 스노비즘'의 뜻은 '너'로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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