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로맨틱 ep.3

by 이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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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너무 로맨틱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평가였다.

“무슨 말이야?”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다보니 무슨 심문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가 되어 심각하게 울려 퍼졌다.

로맨틱. 사전에 찾아보니 ‘로맨틱하다’는 낭만적인 데가 있다,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인 데가 있다, 라고 나왔다.

“어떨 때 보면 진짜 로맨티스트 같아.”

거의 욕처럼 말했다. ‘너 가끔 보면 쓰레기 같아’ 통상적으로 그런 말을 할 때와 비슷한 뉘앙스였다.

“사랑꾼, 뭐 그런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면?

“로맨틱?”

“어, 로맨틱. 낭만주의적이라 해야 하나 이상주의적이라 해야 하나.”

“낭만주의와 이상주의는 다른 거야.”

“아무튼, 너는 로맨틱이 되게 중요한 사람처럼 보여.”

참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로맨틱’이 발목을 잡더니. 세상에, 이제는 ‘너무 로맨틱’하단다. 아니, 심지어 나더러 ‘로맨티스트’ 같다고 한다. 매번 나를 괴롭히는 이놈의 로맨틱.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나.

“그게 무슨 의미야.”

“그냥 좀 대충 이렇게 각자, 뭐 이렇게 넘어가는 거 싫어하잖아. 같이, 아기자기, 오순도순, 예쁘게, 아름답게, 정성 들이고 이런 거 좋아하잖아.”

그게 나쁜 건가, 나쁜 거야? 하고 물으려다 말고 그대로 두었다.

“그런 게 좀 퍽 로맨티스트스럽다는 거지. 첨엔 되게 시크한 줄 알았는데.”

그의 말을 듣자 하니 ‘로맨티스트’는 거의 죄악시 되고 있었다. 피곤하기만 하고 좋을 것 하나 없다는 식의. 그의 세계에서 ‘시크’는 최고의 선이고 ‘로맨틱’은 악이다.

처음엔 시크, 지금은 로맨틱, 그것도 ‘퍽’ 로맨틱?

“그래서, 그게 싫어?”

마침내 최고로 지질한 질문을 발사하고 말았다(그게 나쁜 거야? 라는 질문보다 한층 더 지질하다고 생각한다). 자, 이제 수습해라.

“아니, 싫다기 보단……되게 의외라는 거지.”

다년간의 ‘로맨틱’한 글쓰기가 나를 ‘로맨티스트’로 만들어버린 걸까. 아니면, 나는 원래 그의 말대로 ‘시크’한 사람인데, 무수히 많은 에디터들이 그랬듯 나는 ‘로맨틱’이 부족한 사람인데, 이 연애를 통해 ‘로맨틱’한 사람으로 바뀐 걸까. 이 연애가 얼마나 무미건조했으면 시크하던 내가 졸지에 로맨티스트가 되었나. 무엇이 나를, 이렇게.

“혹시 그렇게 생각해?”

“뭘?”

“열정이 있는 연애가, 촌스럽다고?”

“음……”

대답에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걸 보니 질문을 듣는 순간 벌써 속으로는 Yes! Yes! 라고 외쳤으나,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다른 부드러운 말로 바꿀 말을 생각하는 중이겠지.

어차피 늦어진 대답, 말이라도 신중히 잘 골라줬으면 했다.

“그렇다기보다는 좀……”

그러고도 한참을 뜸 들였다.

“피곤하지.”

피곤. 열정이 있는 연애는 피곤.

최악이다.

“그런 연애가 항상 끝이 안 좋더라고.”

지금까지 얘는 어떤 연애를 해 온 걸까. 갑자기 그가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열정이 없는 연애가 가능하긴 한가. 물론 열정‘만’ 있어선 안 되겠지만, 열정이 없는 연애는 안정적인 연애가 아니라, 깊이가 없는 연애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열정이 없는 연애야말로 끝이 좋을 수가 없는 거 아닌가.

식어버린 고기를 먹는 일처럼. 따뜻할 때는 그토록 맛있었던 고기가, 차갑게 식으면 질겅질겅 질겨지고 누린내도 올라오는 탓에 영 맛이 없어져 못 먹는 것처럼.

열정이 없는 연애는 재미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대답이 뻔했다. 연애는 재미로 하는 게 아냐. 그런 말을 듣기가 싫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피곤한 연애는 질색이야.”

대신 나는 단지 그렇게 말했다.

너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말로 그 말이었다는 듯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나는 권태로운 연애를 억지로 지속시켜 나가는 걸 ‘피곤’하게 느껴. 네가 열정이 있는 연애가 피곤하다고 느끼듯이. 너는 피곤한 연애가 싫고, 네 세계에서 로맨티스트는 피곤한 사람이라 필연적으로 연애를 피곤하게 만드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쯤 하도록 할게. 우리에겐 별로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우리 그만하자.”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저기 내 말 오해한 것 같은데…”

“아니, 오해한 거 없는 것 같은데.”

당황한 듯 수습하는 너의 말 허리를 확 자르자, 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나와의 연애가 피곤하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의 말들과 그 미묘한 말투 속에서 사랑에 대한 열정을 폄하하는 어쭙잖은 우월감을 읽어냈고, 그것은 곧 나라는 사람을 폄훼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과의 연애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정말 헤어지자는 거야? 화나서 그래? 그랬다면 미안해. 너 화나게 하려고 그런 말 한 건 아냐. 내가 로맨티스트라고 말해서 홧김에 이러는 거면……”

“나.”

그의 말을 또 끊었다.

“피곤해.”

그렇게 말하자 그가 당황하여 쉴새 없이 놀리던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그를 지나쳐 나오며 속으로 읊조렸다.



살아가면서 네가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로맨틱이 결국 네 발목을 잡을 거야, 빌어먹을 로맨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