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볼까말까 고민하다가 본 영화는 감격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것이란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건 행복이 아냐"
영화가 끝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였다.
영화관은 끝 줄 두줄 정도가 간신히 찼을 뿐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오는 음악이 영화의 남은 여운을 오래도록 지속시켜주었다. 마치 불을 꺼도 주전자에 잔열이 남아있듯이. 끓지 않아도 따뜻하듯이. 나는 그 잔열을 되도록 천천히 식히고픈 마음에 영화가 끝났는데도 멍하니 영화관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이 영화를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였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그의 음악을 나는 내 인생의 BGM으로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모른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도서관에서 밤을 샜던 수많은 날들과 비오는 날의 산책, 어지러운 마음을 잠재우고 다독이고자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명상할때도 그의 음악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었다.
감히 '좋아하는 음악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음악을 15년동안 정말 많이도, 지겹게도 들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A flower is not a flower' 이 두 곡은 악보를 뽑아 서투르게나마 연습해보기도 했다. 그가 수놓은 악보를 귀가 아닌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몰랐다니.
그는 작년에 고인이 됐다. 영화관을 떠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앉아있었던 것도 그의 음악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모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나같은 사람이 몇몇 더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엔딩크레딧 마저 다 올라가고, 음악이 멈추었음에도 남아있는 관객들이 있었다.
"다음 상영 준비를 위해 영화관을 정리해야하니, 퇴실해주시기 바랍니다."
영화관 직원의 목소리에 나는 마법에 풀린듯 나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리스트를 귀에 꼽고 걸었다.
얼마나 긴 산책이 될지 모를 산책이었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영화 사운드트랙인 hwit, 20220207, Monster 1, Monster 2, 20220302, hibari, Aqua 를 연속해서 들었다. 홍대에서 연남 경의선 숲길을 통과해 연남에서 연희, 연희 교차로를 지나 홍제천까지 홍제천에서 다시 망원한강공원을 지나 수변에 턱 걸터 앉았다.
산책하는 동안 줄곧 영화에 대해 생각하며 여운을 느꼈던 것 같은데,
막상 멈춰 앉아보니 그건 영화에 대한 것들이 아니라 그냥 내 인생 전반에 대한 기억을 필름을 돌려보듯 훑고 나왔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느꼈던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복잡 미묘한 것임에는 틀림 없었다. 안타까움, 어떤 슬픔, 죄책감 비슷한 것도 느꼈고 그런데 이상하게 너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도 생각했고, 실로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행복했고, 그러면서도 슬펐고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결국 눈물이 났다.
순수함을 직면할 때 나는 요즘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마주했던 찬란한 순수와 그들만의 세계와 그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그들'의 세계, 어른들의 오해와 그 속에서도 영원히 빛나는 순수. 순수와 행복. 결국 그게 남았고, 나는 조금 울었다.
행복은 정말 사소하고 평범한 거야. 대단한 게 아니야.
누구나,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거고,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건 행복이 아닌거야.
그 한 줄의 메시지가 남았다.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면서도 계속 음악을 들었다. Shining Boy & Little Randy를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녁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소름 끼치도록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