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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창작·공유의 시대에서 나만의 중심 잡기

by 이재이

매일 미처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단 한 번의 터치만으로 손끝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콘텐츠, 창작물, 데이터들. 기술의 발전은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편리함을 보장하지만, 그만큼 ‘소유’와 ‘표현’의 가치를 다시금 묻게 되는 시대에 직면하게 한다. 특히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현재 변화와 확장을 거치면서 명확한 개념의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저작권은 소위 '창작자의 권리'다. 글, 그림, 영상, 음악 등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은 단순한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의 손끝에서 태어난 고유한 표현이자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다. 그런 창작을 보호해 주는 것이 저작권의 본질이며 이를 통해 창작자가 계속해서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보호막이 옅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기자로 일할 당시의 일이었다. 수많은 취재 끝에 쓴 한 기사가 뉴스로 나간 지 이틀쯤 됐을까. 평소처럼 뉴스를 검색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쓴 기사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그것도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까지 도용된 채 모 공중파 뉴스 코너에 버젓이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는커녕 기본적인 인용조차 없었다. 기사를 그대로 도용한 사람은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상실한 사람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회사 측에서 해당 방송사에 연락을 취해 항의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사과는커녕 해명조차 없었고, 문제의 영상은 여전히 인터넷에 떠돌며 마치 그들의 원작인 것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분노와 허탈감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 순간 저작권은 단순한 법조문이 아니라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 애정, 수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걸 체감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무한한 질문을 양산해 냈다. 오늘날 과연 우리는 창작의 가치를 제대로 대우받고 있는가? 정보가 폭발적으로 흘러넘치고, AI가 기사를 요약하고, 이미지와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금 시대에 ‘진짜 창작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무형의 결과물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생산한 콘텐츠는 ‘저작물’인가? 그렇다면 누구의 것인가? 기존 창작물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 패러디, 밈 콘텐츠는 보호받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법적 논쟁을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적 가치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저작권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그럴 때마다 이런 질문에 직면하는 건 불가피할 것이다.


내 이야기를 글로, 감정을 노래로, 세상의 모순을 영상으로 풀어내는 그 행위 자체는 인간의 고유한 본능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베끼거나 훔쳤을 때 느끼는 억울함은, 결국 ‘표현에 대한 권리’와 ‘창작에 대한 존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저작권을 법 이전에 '존중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타인의 창작을 마주할 때,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고민과 시간, 감정의 무게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문장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쓰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늘 균형을 고민한다. 공유가 주는 즐거움과 표현의 자유가 주는 해방감도 물론 잘 알지만, 그 모든 것이 더욱 풍성해지려면 그 기저에는 반드시 ‘권리’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깔려 있어야 한다. 창작이 일상화되고,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일수록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타인의 것을 마치 내 것처럼 다루지 않고, 나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저작권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필요한 감각이다.


앞으로 저작권의 의미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될 것이다. 디지털 기술, 법제도, 사회적 합의가 얽히며 ‘소유’와 ‘공유’의 새로운 정의가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창작에 담긴 진심과 그것을 향한 존중의 마음이다. 어쩌면 저작권은 인간의 고유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지켜주는 마지막 약속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까지 굳게 믿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진심을 담은 창작은 빛난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우리가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존중의 감각을 갖는다면 진정한 창작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빛나는 창작에서 저작권의 의미도 함께 빛을 발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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