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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차별되는 인간다움과 고유성 보존하기

by 이재이

회사에서 처음 인공지능(AI) 유료 버전을 도입했을 때였다. 실험 삼아 내 글을 몇 편 보여주고 학습시켰다. 이후 이러이러한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중심내용은 이렇고, 내 말투를 유지해서 내 스타일로 써달라고 했다. 분량까지 정해주니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딸깍, 클릭 한 번이면 충분했다. 순간 나는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감탄보다는 탄식에 가깝게 아, 하고 내뱉었다.


기술의 속도는 급격히 빨라져 가는데 나는 점점 더 더디고 무뎌져 가는 듯한 느낌. 그 낙차에서 발생한 일종의 괴리감을 온전히 느끼면서 나는 명확히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와 돌이켜 보니 그건 모종의 ‘소외감’과 비슷했다. 불과 몇 초 만에 나보다 더 나 같은, 누가 봐도 내가 쓴 것 같은 ‘스타일’로 뚝딱뚝딱 글을 써내는 인공지능.


이용약관을 읽어 보니, AI를 활용해 생성한 출력물에 대한 저작권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귀속되며 사용자는 이를 이용해 생성한 텍스트, 이미지, 코드 등을 자유롭게 저작권 등록, 출판, 상업적 이용, 작가 명의로 발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AI가 쓴 글의 저작권자는 내가 맞긴 할까.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가 내린 지시에 따라 글을 썼으니 내 글이긴 한 건가. 이런 시대에 ‘나다움’이라든지 ‘고유성’과 같은 건 어떻게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유된 것을 소유하고, 그걸 다시 공유하는 시대에서 온전히 ‘고유’한 게 존재할 수 있긴 한 걸까. 그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나는 주제넘게도 그런 생각을 하며 막연한 상실감 따위를 느꼈다. 아무것도 잃은 게 없는데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뺏겨 버린 듯한 모호한 상실감. 그 알량한 감정을 느끼는 동안에도 인공지능은 내 글에 어울리는 제목을 몇 개 지어 봤다며 줄줄이 읊어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썩 괜찮아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모두 어디서 들어본 듯했고, 하나같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물론 인공지능은 다량의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게 글을 써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떨리는 고백을 들었던 두근거림, 빗소리를 들으며 잠 못 이루던 깊은 밤의 심란함, 어슴푸레한 새벽빛에 의존해 방 안에서 써 내려간 한 줄의 일기까지 흉내 낼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뛰어난 결과를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그 과정 속에 담긴 삶의 철학과 뜨거운 열정의 온도까지는 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이 생성해 낸 삶을 통과하지 않은 문장은 아무리 매끄러워도 생명을 갖지 못한다. 생명력을 소실한 문장에서 진실된 창작의 의미는 발아할 수 없다. 그 속에서 진정한 ‘저작권’이자 '저작물의 가치'라는 게 생길 리 만무하다. 저작권은 단지 법적인 권리를 넘어, 창작자 한 사람의 시간과 노력, 번뇌와 고민의 시간을 존중하고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정한 '창작'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나의 망설임, 밤새 말을 고르고 골랐던 순간들. 그 시간의 응축이 하나의 저작물에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쓴다. 분명히 내가 쓴 문장인데도 다시 읽어보면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온전한 '나'의 인간다움이 보존된다. 말로는 미처 다 쏟아낼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의 언어로 다듬고, 조심스럽게 꺼내어 표현하는 과정에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글을 쓰고 읽는 행위는 다름 아닌 '자기 이해'의 과정이다. 그런 시간들이 축적돼 조금씩 성장하고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빠르고 정확한 것과 역행하는 느리고, 모호하고, 때론 틀리기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 그럼에도 그것을 표현한 것에 대해 온전히 나의 책임을 지는 존재. 그 속에 인간의 고유성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주체성을 가진 삶의 태도가 모여 ‘나만의 방식’과 ‘나’라는 사람이 구축되고 거기서 고유성이 발현된다. 온전히 나로서 하루를 보내면서 철저히 고민하고 나답게 사유하고 솔직히 표현하는 것.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일 것이다.


나는 좀 더 더디고 어리석을지언정 나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그런 글만을 내가 쓴 글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너무 보수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작권’이라는 건 온전히 내가 만들고 쓴 글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술의 진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시대에 내가 스스로 중심을 잡고 창작과 고유성의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진심을 담은 창작과 그 저작물의 고유한 가치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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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